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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락,혁등,의방,망지,만전,만살

유락,혁등,의방,망지,만전,만살

보이차의 이름은 천하에 중하다. 이는 운남의 소산하는 바 되면서 이로움의 바탕이 되어 힘입는 것이다 보이부 소속의 여섯 차산에서 나니 하나는 유락, 둘은 혁등, 셋은 의방, 넷은 망지, 다섯은 만전, 여섯은 만살이라 말하니 두루 팔백리다 산에 들어 차를 만드는 자 수십만명으로 차객이 수매해 각처에 운반하니 매번 길을 메운다.

가히 큰 금전과 양식이라 이를 만 하다 일찌기 보이차가 어느때부터 드러났는가 의문했으니 송나라가 남쪽으로 건너오고 난 뒤 계림의 정강군에서 차로 티벳의 말과 무역했으니 이는 운남에는 차가 없었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기에 범공이 계림을 기록할때도 자신이 마정馬政을 맡았으나 티벳의 차 소유를 말하지 않았고 이석의 속박물지에는 이르기를 차는 은생부의 여러산에 나니 때없이 따서 후추와 생강을 섞어 삶아 마신다 했으니 보이는 옛날 은생부에 속했다.

그러면 티벳의 보이차를 씀이 이미 당나라때 부턴데 송나라 사람은 모르고 오히려 계림에서 차로 말과 무역했으니 운남에는 말이 나오지 않았음이 마땅하다.

이석은 당시에 견문한 바가 없이 그가 한 기록이 증조, 단백 등의 여러 사람에게 끼쳤으니 단백은 송나라 소흥년간의 시대를 당해 오히려 나의 먼 선조 단탁의 묘지墓誌를 한 것이 아직 있다.

그 일이 운남의 일을 적은 것이 자못 많아 족히 사료의 결함을 보충한다 이른다 차산에는 차왕수가 있어 다섯 차산 것보다 홀로 큰데 본래 제갈량이 남긴 종자로 지금 오랑캐 백성이 향사한다 의방과 면전의 차맛이 비교적 낫고 또 순녕에는 태평차가 있어 세윤함이 벽라춘 비슷하며 능히 세번 우리기 격어도 오히려 맛이 있다 대리부에 감통사 차가 있고 운남성의 성에 태화사 차가 있다 그런데 나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이차의 성함만 같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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