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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원차(同慶圓茶)

동경원차(同慶圓茶)

  청나라 말기에 운남성의 차상인들은 대부분 이무진에 집중적으로 공장을 차렸다. 그 이유는 가장 우수한 야생 대엽종 차잎은 이무산에서 자랐으며 따라서 가장 가까운 이무진에서 제일 싱싱한 보이차잎을 얻어서 질 좋은 모차로 만들 수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장점으로 인해 많은 모차 공장들이 연달아 개설되었으며 이에 따라 제다기술도 향상되어 이무의 보이차 생산량은 6대차산의 최고였고 품질면에서도 운남성내에 최고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특히 대엽차잎 품종은 으뜸으로 칭송을 받았다.


동경호 차상점은 1736년에 이무진에 모차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 공장의 규모와 차잎의 생산량은 이곳 지역에서 가장 컸으며, 200여년의 역사와 정통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보이차상점이다.


동경호 개점이후 약 200년 간 줄곧 용마상표의 내표를 사용했는데 1920년 8월에 쌍사기도로 바뀌었다. 1950년 8월에 쌍사기도로 바뀌었다. 1950년 중국 공산정부가 들어서자 차가게를 모두 몰수하여 국유화하자 동경호는 휴업을 선포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50년대 폐업이전에 동경호의 모든 제품은 가장 좋은 이무산의 야생 대엽종차잎,일쇄,건창,등 정통 제다법으로 만들어졌기에 오늘날 보이차계에서는 최고의 보이차로 대접받는다.


1736년에 동경호는 이무진의 이무거리에서 모차공장을 설립하고 보이차를 만들었으며 만들어진 석병이라는곳에서 총괄 판매했다. 따라서 동경호의 차잎공장은 [이무동경호차공장]이라 하고 차상점은 [운남석병동경호]라고 불렀다.


동경호는 200년 동안 이무산의 최고위 차잎을 모아 만들어진 보이차를 석병에 운송해온 후 총판하였다. 보이차 일부분은 상황에 따라 즉시 판매하였으나 대부분은 창고의 들여다놓고 장기간 묵힌후 팔았다. 최고급 차잎 및 엄격한 제다로 인해 동경호 보이차는 믿을 수 있는 품질로 평가받았으며 그 이름이 알려지자 동경호는 곧 최고의 보이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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