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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님의 여러 읽을 거리

배익기님의 게시판에 올려주신 여러 가지 읽을 거리를 올렸습니다.

 

*송 구양수<1007-1072)

 

매요신이 차를 맛보는 것에 화함

 

시내산에 북을 쳐 우레가 놀라게 돕고

새벽에 신령한 싹이 취색줄기를 발하게 한다

따는 곳의 두 깃발 향이 가히 사랑스러운데

공납해 오는 쌍봉그린 차품은 더욱 정精하다

추위가 병골을 침입하니 오직 잠을 생각해

꽃 떨어지는 봄날 근심에 취함을 풀지 못한다

자주빛 잔에 음미하고 또 따루기 기뻐하시니

군의 소쇄함은 남은 맑음이 있음을 부러워 하오

 

*송 매요신<1002-1060)

 

두상공이 채군모가 차를 보내준데 감사하는 것에 화하여 운을 따라 지음

 

천자 해마다 용배차를 맛보시니

차관리는 우전차를 재촉해 딴다

용단향은 이미 도읍의 관부에 들고

투품차는 다투어 태부의 집에 든다

작은돌에 찬샘은 이른맛을 남겨두고

자니紫泥의 신품新品은 봄꽃이 떳다

오땅 가운데 안 사람은 재주가 다소 있으니

이로부터 순나물국은 떠들 것이 없나니

 

*매요신은 송의 유명한 시인으로 구양수와 시우詩友였으며 같이 미려한 문체를 배격하고 질박한 문풍을 주장하는 문단혁신에 앞장섰으며 많은 차시가 전한다 이같이 자사기도 처음엔 질그릇의 질박함을 바탕으로 사인에게 비롯 한 것인데 점차 차그릇으로 대중화 되면서 명말부터 역시 도리어 교묘한 장식과 조형의 기교를 다하여 발전하면서 고가품으로 변해 간 것이니 초기 매요신 같은, 지금도 이른바 막사발을 쓴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와는 전혀 달라진 것이라 할수있다

 

*남송 증기<1084-1166)

 

건자가 용단승설차 두 차과를 얻어 이로 내게 돌리는데 그 값이 만전이라 운운

 

移人尤物衆談誇 / 사람을 옮기는 우물尤物을 무리들이 말해 떠드는 것을

지니고 뜰을 쫓아 걸으니 뜻이 가상하다

스스로 변변한 찬거리도 없는 집에

용단차는 헛되이 천, 만의 차나무에서 취했다

삶아 맛봐 바로 괴이한 재앙을 이룰까 염려되어

쥐고 완상하니 어찌 능히 등차를 정할수 있으리

전현의 소용단을 대한 예에 준하니

한 주머니 깊이 저장해 다만 집에 전한다

 

*남송 주휘의 청파잡지 권6에

 

강연명이 장안의 지휘관이 되어 채경에게 말씀을 구하니 채경이 말하길

"공이 그기 이르면 또한 냉차를 마시리"

장안의 기적에 오른 기생의 보무가 작아 다님이 더디어 경과한 차가 반드시 식는 것을 이름이다 처음에 까닭을 모르다가 뒤에 그기 풍습을 당해 익혀 보고야 알았다

 

*여거인의 헌거록에,

 

강연명의 자는 은계로 장안을 수帥하게 되어 태사 채경에게 말씀하니 채경이 희언해 이르길,

"공은 지금 냉차 마시러 가는 것이요"

강연명은 이해를 못했으나 감히 발설해 묻지 못하고 친척간에 장안의 풍물에 익숙한 자 있어 인해 이 말로 방문하니 이에 웃어 말하길,

"장안 기녀의 보무가 극히 작아 다님이 모두 더디고 느슨해 이에 냉차를 마신다는 희언이 있는 것이요"

 

*이땐 더우기 바로 타서 익혀 마시는 말차末茶이기 때문에 차 마시기에서 냉온이 더 주의된 듯 하다

 

*구화시집에 실린 진애陳崖의,

 

김지차 / 김지차

구화산에 난다 서로 전하길 김지장이 서역으로부터 지녀온 것이라 한다

 

瘦莖尖葉帶餘馨 / 여윈줄기 뾰족한 잎이 넉넉한 향을 띠었고

細嚼能令困自醒 / 잘게 씹어 곤함을 능히 깨게한다

一段山間奇絶事 / 일단은 산간의 절대 기이한 일이니

會須添入品茶經 / 모름지기 차경에 첨입하여 품해야 하네

 

*유월의 차향실총초 권21 "민차"에서,

 

민차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구화산에 있다 서로 전하길 김지장이 구화산에 지팡이를 세우고 머무르니 민장자의 집이 산속에 있어 성품이 보시를 기뻐했다 김지장이 나아가 하나의 가사를 둘 땅을 구하여 드디어 민씨 전원의 산택일대를 다 했다 장자가 말하길, 이미 후회없음은 수락했으나 다만 나는 어느 땅에 둘까요 하니 지장이 단사를 땅에 뿌리고 장자로 하여금 집을 닫게하고 이로 흰해가 집을 뽑아 날아 오르게 했으니 그 집은 지금 부처의 전당이 되고 그 밭두둑도 지금 민원이라 부른다

하나는 휴녕에 있으니......

 

*남송 호자의 초계어은총화전집 권제 22에,

 

서청시화에 이르길, 당 이상은의 의산잡찬 품목 수십가지가 대개 골계담의 글로서 그 하나를 살풍경이라 말하니,

맑은샘에 발씻기,

꽃아래 바지 볕쬐기,

산을 등져 다락을 일으키기,

거문고를 불때 학을 삶기,

꽃을 대해 차를 마시기,

솔 아래서 길 여는 벽제소리를 외치기를 이르는 것이다

경력년간에 안원헌이 재상직을 그만두고 영땅의 수령을 했는데 혜산샘으로 일주차를 팽차하고 조용히 술을 갖추어 두고 시를 부賦해 이르기를,

"회계산은 새차로 녹색이 연무 같고

고요히 차끓이는 그릇 저장상자를 당겨 혜산샘을 삶는다

인간의 살풍경을 향하지 않고

더우기 술지게미를 지니고 꽃앞에 취하네"

또 원풍 말년에 왕안석이 금릉에 거주할때 대조 직위의 장지기가 밤에 공을 장산에서 뵈었는데 길 여는 벽제 소리가 심히 대단했다 공은 "솔아래서 물렀거라 외치다"를 취해 시를 지어 희언해 말하길,

"쇠한 몸 부축해 남쪽밭둑에서 긴 가래나무를 바라보니

등불이 별 같이 온땅에 가득 흐른다

다만 살풍경이라 전해 부르는 것을 괴이해 하니

어찌 선객禪客이 밤에 서로 투합함을 알리"

이로부터 살풍경의 말이 자못 세상에 전해졌다

삼산노인어록에는 이르길, 당나라 사람은 꽃을 대해 차 마시는 것을 살풍경으로 여겼기에 왕안석이 평보에게 주는 차를 보내며 라는 시에,

"금곡원에 꽃을 보며 마구 다리지 마라" 는 구절이 있게 되었다

 

원 유병충劉秉忠의 고려차를 시차하다

유태부장춘집권1

 

試高麗茶 / 고려차를 시차함

含味芳英久始眞 / 머금은 맛 꽃부리 오래자 진미가 비롯하며

咀回微澁得甘津 / 씹어 돌아옴이 미미히 떫다가 달콤한 진액을 얻는다

萃成海上三峰秀 / 바다위의 삼신산 세봉우리의 빼어남 모아 이루어

奪得江南百苑春 / 강남의 온갖 차원의 봄을 뺏아 얻었으니

香襲芝蘭關窈氣 / 향은 지란芝蘭과 관저의 요조한 기로 엄습하며

淸揮氷雪爽精神 / 맑은 휘저음은 빙설로 정신을 상쾌하니

平生塵慮消融后 / 평생의 티끌 생각 사그려 융화한 뒤

餘韻侵侵正可人 / 남은 운치 시원 시원 정히 사람에게 가능쿠나

*侵은 人대신 馬, 말 빨리 달릴 침.

 

 

*유병충<1216-1274)은 원나라 형주사람으로 초명은 축, 자는 중회仲晦이며 어려서 중이 되어 이름은 자총子聰으로 장춘상인藏春上人으로 자호했다

박학다재하여 천문, 지리, 율력에 정통하고 홀필렬이 등극하기 이전 번왕의 시절에 번저에 들어가 기밀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후 지원 8년<1271) 대원으로 국호를 세우고 조정의 의례와 관제를 정할 것을 청했다 장춘집이란 그의 문집이 있다

 

*명 이일화의 육연재3필 권1에,

 

고려의 의원은 질병을 다스리는 약을 씀이 단미, 양미에 그치고 세가지에 이르면 극히 많은 것으로 네가지는 있지 않다 대개 약성이 오로지하면 달達하고 두가지면 제濟하고 셋이면 조調하고 넷이면 섞여 참參해서 더불어 제制(*參與制)하고 다시 많으면 서로 뺏아서 공을 아뢰지 못한다 우연히 학질과 이질의 두 처방이 심히 간단하면서 효험이 있는 것을 전했으니 지금 여기 적는다

이질을 다스리는 것은 이미二味에 그쳐 색이 흰 백리는 추위를 우환하니 생강 한냥과 정세한 차 오전을 쓰고 색이 붉은 적리는 열을 우환하니 정세한 차 한냥과 생강 오전을 쓰고 붉고 흰것이 섞인 적백리는 생강과 차를 각자 오전하여 하수河水 두 완을 다려 일완에 이르면 따뜻이 복용한다

학질은 오래고 가까운 것을 물론하고 하수오 날것 오전, 청피靑皮 삼전, 진피 이전, 술 일완, 하수河水 일완을 다려 일완에 이르러 따뜻이 복용하면 바로 낫는다

 

*청 왕응규의 유남속필 권2 제 157항에

 

벽라춘碧螺春

동정산의 동산 벽라봉 석벽에 야차 몇그루가 나서 해마다 사인士人이 대광주리를 지니고 따오는 것이 수십년을 지나며 이 같이 하고 그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강희년간의 어느해에 시후를 보아 따는데 그 잎이 비교적 많아 광주리에 이루 다 담지 못해 품에 놓으니 차는 열기를 받아 남다른 향이 홀연히 발해 차를 따는 자는 다투어 "혁살인향"이라 불렀다 혁살인향이란 것은 헉! 놀래 사람 죽일듯한 향이란 뜻의 오땅의 방언이다 인해서 드디어 이 이차의 이름을 했다 이른다

이로부터 매번 차를 따면 사인, 남녀노소가 힘써 반드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 온 집이 다 가서 광주리에 채우지 않고 모두 품안에 두었다 사인 주원정이 홀로 제법에 정精해서 그 집에서 나온 것은 더욱 묘품이라 일러 매 근마다 값이 석냥어치다 기묘년에 어가가 태호에 행차하니 송공이 이차를 사서 진상하니 상은 그 이름이 정아하지 못해 벽라춘이라 이름지어 말했다 이로부터 지방의 큰 관리가 해마다 반드시 따 만들기 힘쓰는데 파는 자는 왕왕 가짜로 참을 어지럽혔다 주원정이 죽자 제법이 전하지 않아 바로 참인 것도 일전의 것만 못하게 되었다

 

*주침의 동정동산물고에,

 

차에 명전 우전의 이름이 있으니 따는 일의 더디고 이른 것으로 인해 거칠고 잗다란 것을 구분한 것이다 여명에 차를 따니 손톱을 써 여린싹을 끊어 따고 손으로 비따지 않으며 광주리 안에 두고 젖은 베로 덮어 그 시들어 타는 것을 막아서 집에 돌아와 가지와 줄기를 가려 제거하고 또 여리고 뾰족한 한잎짜리와 두잎을 구분하는데 혹 여리고 뾰족한 것이 한잎이 연이어져 일기일창이 되는 것을 그에 따라 가려서 만든다 작법은 깨끗한 솥에 잎파리 너댓냥을 넣고 먼저 문화를 써고 다음 조금 왕성히 해서 두손을 솥에 넣어 급급히 볶아 굴린다 반쯤익는 것을 정도로 한다 과숙하면 타서 향이 흩고 부족하면 향기가 투철하지 못한다 볶아 들어올려 자기동이 안에 넣는데 곁에서 부채로 부친다 그렇지 않으면 색이 누렇고 향이 감한다 벽라춘에는 흰털이 있는데 다른차는 없다 벽라춘은 용정차 등에 비해 향 나지만 맛은 박해서 우리면 세 차례에 불과하다 마시면 청량하고 술깨며 잠을 푸는 공이 있다 씨뿌림은 산의 땅이 마땅하고 비옥한 토양을 기뻐하지 않는다

 

*벽라봉,벽라춘碧螺春의 라螺는 글에 따라 흔히 덩쿨식물을 말하는 라蘿로 써 있는데 아마 원래는 녹색덩쿨의 봉우리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뒤에 여기 소산하는 차의 제법된 것이 벽색에 소라처럼 둥글게 말렸기에 벽라춘碧螺春으로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한말 안종수의 농정신편에 보면 지금 흔히 녹차라 통괄해 부르것 중에 대표적인 수제차로서 단지 뜨거운 열솥에 볶아 제법할 뿐인 것은 중국식차란 의미의 당차唐茶라 말하고 있으며 녹차라는 개념은 따로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원래 녹차로 유명한 상해의 용정차를 말한 청말 정육의 용정방차기에 보면 약간의 차를 한솥 제법해 내는데 드는 시간이 무려 30분이라고 하고 있다 즉 바꿔말하면 비록 중국의 당시 일반적 제법방식인 당차처럼 열솥에 가공한다해도 이는 볶는게 아니라 예전에 빨은 외출복이 아직 마르지 않아 입고 나가야 할때처럼 솥의 미미한 열에 불말려 마치 볕쬐 가공하는 차 처럼 단지 열솥을 이용해 푸르게 배화할 뿐인 것이다 이는 아마 서양에 차를 수출하면서, 특히 당시 미국에서 녹색차를 좋아해 구매한데도 기인하지 않는가 한다

 

*청 서가, 청패류초에

 

티벳의 차무茶務

티벳사람은 음차를 좋아하니 평일에 모두 소와 양의 고기를 먹어 마시지 않으면 배가 불러진다 심지어 소와 말도 반드시 마신다 그래서 차의 소모가 심히 많다.

 

차잎의 대황大黃을 서로 저자함

서북유목민의 여러 부락은 차 보기를 제 2의 생명으로 여긴다 대체로 그 날마다 먹는 것이 누린 낙젖으로 심히 살찌고 미끄러워 이것이 아니면 맑게 영위해 소화를 도울수 없기 때문이다 객이객 지역과 몽고의 회교부락에는 우러러 받게 되지 않음이 없다 서양의 상선이 중국에 오면 수요하는 물건이 또한 오직 차를 급히 한다 아라사는 또 우리나라의 대황을 진귀한 약으로 여겨 그 들이는 입구는 흡극도 라는 곳인데 정부에서는 일찌기 그 조약을 어긴 것으로 해서 대황의 출구出口를 금지 시켰다가 뒤에 처음과 같이 회복했다.

 

녹차제조

녹차의 제법은 장차 따 내린 여린 잎을 찌는 바구니에 넣어 찌고 혹 솥안에 넣어 볶는데 잎이 끈적여 붙으며 향을 내는 때에 이르러 바로 취해 내어 평평히 깔고 부채질해 식히며 다시 배화하는데 넣어 배화하고 유념해서 점차 건조하게 하고 다시 화력이 조금 약한 배화로에 넣어 반대로 엎어 유념해 마찰해 십분 건조해 진 뒤 그친다

기문, 무원, 건평 세 현의 좀전까지 낸 녹차는 그 제법의 순서가 무릇 다섯이니 하나는 푸르게 말리는 것이고 둘은 비벼 유념하기 셋은 발효 넷은 배화해 불쬐기 다섯은 체질해 나누기.

 

오룡차 제법

오룡차는 민, 월 등의 곳에 소산하는 홍차다 생잎을 볕쬐 말려 누렇게 변한 뒤 구시통안에 두고 유념해서 불쬐어 열하게 하고 재차 미약한 불의 솥에 옮겨 유념해 맺고 베로 가려 덮어 발효해 붉게 변하게 해서 이룬다 향과 맛이 농울해 차 가운데 상품이다.

 

어느 부호옹이 차 마시기를 좋아함

조주의 어느 부호는 차를 좋아함이 우심했다 하루는 거지가 이르럼이 있어 문에 기대어 서서 부호를 흘겨보며 말하길 군의 집에 차가 심히 정精하다 들었는데 한잔 하사해 줄수 없겠습니까? 부호가 비웃어 말하길 너는 걸인으로 또한 이를 이해 하는가? 거지가 말하길 나도 일전엔 부자였는데 차로 파가했습니다 지금도 처자가 오히려 있어 구걸을 행하는데 힘입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인해서 차를 짐작해 주니 거지는 마시기 다하자 말하길 차는 실로 가佳한데 아깝게도 극히 순후하지는 못하니 대체로 차호가 너무 새것인 까닭입니다 내가 호를 하나 가지고 있으니 예전에 늘 쓰던 것으로 지금 나길때는 반드시 지니고 다녀 비록 얼고 주려도 일찌기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찾아서 보니 실로 정절해서 색이 검스럼하고 뚜껑을 열면 향기가 맑고 차와 부지 불각에 애모했다 빌려 전차하니 맛이 과연 맑고 진국이어 일상품과 달랐다 인해서 구입하려 하니 거지가 말하길, 나는 모두 팔지는 못하고 이 차호는 실로 삼천금의 값어치 인데 지금 당연히 반을 팔아 군에게 주니 군은 나에게 일천 오백금을 주시고 취해서 집의 일에 베풀어 두시면 바로 가능한 때에 군의 재실에 이르러 군과 더불어 차를 마시며 청담하며 같이 이 차호를 누림이 어떻겠습니까? 부호는 흔연히 승락해 거지는 금을 취해 돌아가고 이 뒤로부터 날마다 그 집에 이르러 대좌해 팽차해서 연고있던 사귐 같았다.

 

몽고인의 차 먹음

차는 음료인데 몽고인은 이에 먹이로 하고 물을 더해 삶지를 않는다 소용하는 것이 전차塼茶가 되어 번번히 소고기와 우유 안에 놓고 잡되게 다린다 그 평일 비록 육식에 치우쳐도 괴혈병에 우환하지 않는 것은 또한 이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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