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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라춘 전설

*벽라춘 전설

황벽라춘은 고급의 녹차이다.

강소(江蘇)성 무석(無錫, 우시)의 태호(太湖, 타이후)에 있는 두개의 동정산(洞庭山)에서 나는데 매년 곡우(穀雨) 사나흘전에 나오는 새잎을 따면 최고급의 명예를 얻게 된다. 두 동정산이란 태호의 북쪽 호숫가에 걸쳐 있는 동 동정산과 호수의 가운데 있는 서 동정산을 말한다.

옛날 서 동정산에 벽라(碧螺)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었다.

벽라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혼자서 자랐으나 고운 목소리와 예쁜 자태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녀의 고운 노래는 농삿일에 지친 사람들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의 역할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해 이른 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광폭한 용이 태호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엉뚱한 요구를 내놓았던 것이다.

"서 동정산의 정상에 사당을 짓고 매일 향을 태울 것이며, 매월 공양물을 바치되 매년 어린 몸종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벽라는 나의 마누라로 삼을 것이로다."

사람들은 이 요구를 무시하고 벽라를 숨겼다. 그러자 용은 격노하여 낮에는파도로 배를 전복시키고 밤에는 큰 바람을 일으켜 서 동정산에 있는 농작물이며 나무, 집들을 망쳐 버렸다. 사람들 모두가 공포에 떨며 용이 요구하는대로 들어주려하자 아상(阿祥)이라는 젊은이가 일어나 자기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무예도 뛰어나지만 특히 수영솜씨가 훌륭하여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이레나 물밖에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벽라를 사랑하고 잇었던 아상은 용에게 벽라를 빼앗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도 뜨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어느날 밤. 아상은 길다란 작살을 하나 들고 타이후에 들어가 조용히 헤엄을 쳐서 서동정산으로 숨어 들어가 마침 잠이 들어있는 용의 등에 아상은 작살을 힘껏 찔렀다.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용은 정신을 차리고 독 이빨을 내보이며 아상에게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들의 싸움은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물속으로, 땅위로 이렛동안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에 마침내는 용은 발톱을 세울 힘도 없어졌고 아상은 작살을 들 힘도 없어졌다.

용은 물속에 깊이 숨었지만 피를 물위로 내뿜고 있었고 아상도 피를 흘리며 산 밑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가는데 용에게 뽑혀 죽은 나무뿌리에 아상의 피가 닿으면 죽은 나무가 살아나고 새잎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것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감동하여 모두 용기를 내어 용을 찾아낸 다음 토막을 쳐서 죽였다. 그리고 아상을모시고 와 상처를 씻고 약을 발라 치료를 하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그의 몸은 쉽사리 회복되지 아니 하였다. 다만 한가지 그의 낙이라면 벽라가 매일 그를 찾아와 간호를 해준다는 점이었다.

 

그가 매일 벽라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 벽라를 사모하였다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벽라는 깊이 감동하여 아예 아상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치료를 맡기로 하였다. 그러나 벽라의 정성도 보람없이 아상의 병세는 점점 나빠져 벽라가 그를 위해 노래를 들려줄 때만 실날같은 미소를 띨 뿐이었다.

어느날 벽라는 약초를 찾아 아상이 용과 싸웠던 곳으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웬 어린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아상이 이렛동안이나 용과 싸웠다는 사실을 후세에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 차나무를 정상으로 옮겨 심었다.

이 때가 경칩(3월 6일경)이어서 아직 날씨가 쌀쌀한 때이므로 걱정도 되었으나 다행히 차나무는 별탈없이 자라 새싹도 돋아났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새싹을 하나하나 입에 머금었다. 아침의 찬기운으로 부터 새삭을 지켜내려는 정성이었던 것이다.

청명(4월 5일경)이 지나고 곡우(4월 20일경)가 가까워지면서 그녀는 생각하였다.

"입으로 따뜻하게 하여 키운 싹인데 딸 때도 입으로 따서 아상에게 마시도록 해야 되겠다."

그녀가 입으로 따와 끓여 내놓는 차를 한모금 마신 아상은 그 향이 온몸으로 통하면서 단번에 상큼한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단숨에 차를 비웠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몸의 아픔이 가시고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신선이 준 약이 아닌가."

이때부터 매일 벽라는 차잎을 입으로 따서 노래를 부르며 햇빛에 말리고 차를 끓여 내놓는 일을 계속하였다. 아상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였다.

그런데 벽라의 얼굴은 반대로 하루가 다르게 수척하여졌다. 그녀의 생기가 차잎으로 옮겨간 때문이다. 마침내 벽라는 건강을 회복한 아상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로부터 사정 이야기를 들은 아상은 그녀를 산의 봉우리에 묻고서 그녀의 영혼을 지키며 그곳에 살기로 하였다. 수십년이 지난뒤. 아상은 아직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후 벽라가 묻힌 산봉우리는 표묘봉( 峰, 덧없이 넓은 봉우리라는 뜻)이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곡우가 되면 많은 처녀들이 모여들어 차잎을 따는 풍습이 생겨나 이 차를 벽라춘이라 부르게 되었다.

너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도 전해지고 있다.

벽라춘(碧螺春)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태호(太湖) 지방 사람들은 그 향기가너무나 좋아 사람을 죽이는 향기( 煞人香, 혁살인향)이라 하였다.

청나라 강희(康熙) 임금 때, 이곳에 사는 주(朱)씨 성을 가진 이가 있어 차를 잘 만드는 명인이었다. 어느날 강희가 이곳을 찾아 벽라춘을 마셨는데 마실수록 그 향이 좋아 주씨를 불러 차의 이름을 물었다.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은 없었으므로 주씨는 혁살인향차( 煞人香茶)라고 아뢰었다.

"사람을 죽이는 향을 가진 차라니 이름이 고약하다.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느냐?"

"어느 봄날 벽라봉에 올라 차를 따다가 그 향에 취해 날 저문줄 모르고 헤메다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그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차나무가 벽라봉에 있으니 앞으로는 벽라춘(碧螺春)으로 부르라."

이렇게 해서 이 차의 이름은 벽라춘으로 이름지어졌다 한다.

그런데 이 차는 워낙 적은 양이 산출되어 만들어진 것은 모두 궁중에 바치는 공물이 되었다 한다.

대개의 차와 마찬가지로 이 차도 극품은 맨처음 잎 하나가 나왔을 때 딴 것이 좋은데 이것은 춘분에서 곡우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잎하나의 길이가 1cm에 불과하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을 말리면 다른 차보다 훨씬 작고 가늘어 한근에 좋은 것은 65,000개의 잎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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