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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범어사 대성암(차따라:6)

【0006】범어사 대성암(차따라:6)

한국일보 97.06.10 29면 (문화) 기획․연재


◎ 좋은 물에 좋은 차 ꡐ맛․향이 날아갈 듯

/비구니 정성으로 만든 초여름 두물차를 ꡐ성인이 숨겨둔 찻물ꡑ 대성은수로 우려내면 한모금 순간 몸속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부산 금정산 범어사 바로 옆 대성암에서 차를 마시노라면 좋은 물이 없으면 좋은 차도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웬만큼 차맛과 차의 멋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 대성암 차는 맛과 향이 뛰어난 명차로 꼽힌다. 비구니들이 정성들여 덖은 차를 암자밑으로 흐르는 계곡수로 우려내 한모금 입에 머금으면 그 순간 몸속으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듯 정신이 쇄락해짐을 느끼게 된다.

범어사를 보고 오르는 왼쪽 숲속 계곡은 겉으로는 바위만 보이지만 바위 밑으로 개울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소위 「너덜겅」계곡이다. 범어사 입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그 유명한 범어사 등나무를 지나 절 뒤까지 이어지는 이 계곡은 전국의 명석이란 명석은 모두 모아 놓은 듯 크고 작은 바위가 절묘하게 놓여있다.

이 계곡을 무척이나 아끼는 부산사람들은 바위 아래로 흐르는 물을 「대성은수」라고 부른다. 얼마나 차맛을 좋게 하길래 바위아래로 소리만 내며 흐르는 계곡물을 「큰 성인이 숨겨 놓은 찻물」이라 했을까. 대성암에서 마시는 한 잔 차가 한 순간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비밀의 절반은 대성은수 때문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다.

지금 대성암 200여평 차밭에는 두물차(초여름차)차싹이 한창 피어 오르고 있다. 두물차를 따 쇠솥에서 찻잎을 덖어내는 대성암 비구니들의 손길이 바쁠 때다. 먼저 무쇠솥을 장작불로 달군다. 손바닥이 따끈따끈할 정도가 되면 물을 뿌려 김을 올린후 금방 딴 찻잎을 두툼하게 깔고, 물을 약간 퉁기듯 뿌리고 솥뚜껑을 닫는다. 이윽고 김이 훅훅 새나오면 뚜껑을 열고 찻잎을 골고루 섞으면서 덖는다. 덖어진 찻잎을 삼베를 깐 바닥에 옮겨 10여명의 비구니들이 손으로 세게 비빈다. 손바닥이 화끈화끈 할 정도로 뜨겁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찻잎에서는 거품에 이어 진이 나온다. 골이 깊은 큰 멍석은 찻잎에서 나오는 진을 너무 빨아 먹어버려 삼베에다 비비고 있다. 다시 무쇠솥에 옮겨서 덖는다. 또 끄집어 내 비비기를 6~7번 정도 반복한다. 비비기가 끝나면 미지근한 솥에서 말린 다음 뜨뜻한 온돌방에서 밤새 말린다.

다음 날 아침 따끈따끈한 무쇠솥에서 마지막 말리기를 하면 완성품이 된다. 찻잎은 매 발가락처럼 단단하면서도 윤기가 흐른다. 떨어뜨리면 땡그랑 소리가 날것 같다. 보통 3~4차례 비벼 차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정성이 여간 아니다. 비로소 대성은수가 어울리는 차가 탄생한 것이다.

대성암은 비구니만 50여명 있는 암자. 차만드는 일을 책임진 성공스님은 지난 72년 이곳에 입산한 직후 은사스님인 자행스님으로부터 차밭을 관리하고 차를 따고 만드는 일을 가장 먼저 배웠다. 원래 대성암 주변에는 범어사 절 식구들이 일년 먹을 차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차나무가 많았으나 성공스님이 입산할 때 쯤 이미 대부분 없어져 버렸다. 암자 서쪽 산비탈 군데군데 채소밭에 차를 심어 대성암 차의 명맥을 유지한 것이 고작이었다.

10년전 차밭을 200여평으로 넓히면서 지리산 야생차씨를 심었다. 이곳 차밭에서 나오는 차로는 절 식구들 차양식으로도 모자라지만 그래도 해마다 서너차례 찻잎이 나올 무렵 차를 만드는 것은 대성암의 큰 행사다.

대성암 제다법은 지난 90년 100세로 입적한 광주 극락암 응송스님의 차만드는 법과 같다. 응송스님은 해남 대흥사에서 머리를 깎은 초의스님의 종법손으로 일제때 30여년 대흥사 주지로 대흥사의 전통적인 차만드는 법을 익힌데다 초의스님의 차법을 이어 받은 법제자였다. 성공스님은 응송스님으로부터 차만드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성공스님은 다만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차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성암 차중에서 특히 성공스님이 개발한 발효차는 일품이다. 향과 맛이 날아갈듯 가볍다 해서 이름이 「비향」이다. 대만의 명차 「고산오룡」보다 향과 맛이 한수 위다. 녹차를 만드는 기법으로 5번을 덖고 비빈 다음 차를 보자기에 싸 온돌방에서 약간 발효를 시켰다가 마무리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대성암에서 올해 초파일 전후해 만든 첫물차는 100g 들이 기준으로 50여통. 대성암 차만 찾는 큰스님들에게 조금씩 선물하다 보니 벌써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번에 만든 두물차와 9월초에 만들 가을차까지 다 합쳐도 50여 식구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란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눠줄 것이 없어 대성암 비구니들은 올해 차철도 아쉬운 마음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김대성 편집위원>


◎ 알기쉬운 차 입문

/차기에 얽매이지 말자

차를 마시려면 반드시 차그릇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차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처음부터 일상의 그릇이 따로 있고 차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차맛을 잘 내기 위한 그릇을 다기라고 할 뿐이다.

어떠한 경로든 풀세트로 홈세트 그릇을 갖추었다면 일단은 다기 한벌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 안에 비교적 완벽한 6인용 홍차용 다기 세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생활을 즐기려면 신혼초나 그릇을 처음 구입하였을때 한두번 써보고 그대로 장식장에 넣어둔 그 그릇들을 꺼내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 차를 마시면서 그런 홍차 세트를 쓰라고 하느냐』고 한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다. 『쓰지도 않는 그릇을 왜 구입했느냐?』

먼저 집에 있는 홍차용 다기세트로 차맛을 익힌 뒤 하나 둘 차그릇을 구하는 것이 좋다. 설탕 그릇은 차를 담는 차단지로, 손잡이가 달린 우유 그릇은 오히려 물 식히는 그릇보다 쓰기 편하다. 찻잔안에 쳐진 둥근 원이나, 꽃과 나비 등 자연을 소재로 아기자기한 그림이 있어 조금만 주의하면 물의 양을 가늠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순백의 본 차이나 계열이라 차 빛깔도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 차는 우리 차 그릇에…」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유럽의 홍차용 다기도 동양의 차그릇이 건너가 그들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차그릇도 오늘의 우리 삶에 맞게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차를 우려내는 우리 차그릇도 없고, 홍차용 다기세트도 없다면 과감히 손잡이가 있는 유리잔 사용을 권한다. 이때에 뚜껑으로 유리잔 받침을 사용하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운치있는 차한잔을 만날 수 있다. 옛날에 오늘처럼 유리제품이 흔하였다면 유리제품이 가장 좋은 차그릇이 되었을지 모른다. 유리잔에서 푸른 잎으로 되살아 나는 찻잎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사랑스럽다. 우아하고 조용한 춤사위로 푸른 소매를 떨치는 찻잎, 그것을 바라보며 푸르게 피어나는 삶이 바로 차생활이 아닐까.<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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