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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강화 정수사/최고의 찻물 석중천 무거운듯~부드러움(차따라:11)

【0011】강화 정수사/최고의 찻물 석중천 무거운듯~부드러움(차따라:11)

한국일보  97,07,15 22면 (문화)


◎ 조선초 차승 함허가 돌샘 발견

/그 물맛에 감탄 절 이름도 개명

/차의 진미 우려내는 듯한 맑은 물 지금도 변함없어

차맛을 가릴때 쯤이면 물에 신경을 쓰게 된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물이 나쁘면 차맛을 낼 수 없다. 초의 스님이 중국의 백과사전인 만보전서에서 초록한 다신전 품천편을 보면 「물은 차의 몸이요,차는 물의 정신」(수자다지체 다자수지신)이라 했다.

초의 선사는 또 「유천, 돌샘(석지)의 진수가 아니면 차신이 나타나지 않고, 진차가 아니면 물의 몸(수체)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도 했으며 「산마루에서 솟아 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강바닥에서 솟아나는 샘은 맑고 무거우며, 돌샘은 맑으면서도 부드럽고, 모래샘은 맑고 차갑다…」라는 말도 남겼다. 모두 물을 가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강화도 정수사는 물때문에 생겨난 이름을 가진 절이다. 조선 초기 차승으로 이름난 함허(1376~1433) 스님이 경기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남쪽자락에 있던 정수사를 중창하면서 대웅보전 서쪽 산신각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 오르는 석간수를 발견했다.

함허 스님은 물맛이 너무 뛰어나자 닦을 수를 물 수자로 바꾸어 정수사라고 했다.


「산중의 맛, 산은 깊고 골은 솟아 오는 이 없어

/ 해지도록 쓸쓸히 세상 인연 없어라

/ 낮이면 한가이 산굴에서 나는 구름을 보고

/ 밤이면 시름없이 하늘가운데 달을 보나니

/ 화로에 차 달이는 연기가 향기로운데

/ 누각위 푸른 연기 부드러워라

/ 인간세상 시끄러운 일 꿈꾸지 않고

/ 다만 선열 즐기며 앉아 세월을 보내네」


차의 달인으로 알려진 함허 스님이 정수사 샘물을 예사 물이 아니라고 했다면 믿을 수 밖에 없다. 땅위로 솟아 올라 이 물이 차꾼들에게 알려진지 600여년. 오늘날까지도 내로라는 차꾼이 정수사를 찾는 것이 바로 이 물로 달인 차맛을 보기 위해서이다.

물 가림에 일가견을 가진 차인들과 함께 정수사를 찾았다. 강화읍에서 84번 지방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길상면 소재지인 온수리를 지나 전등사 아래 주차장을 지난다. 동막리로 가는 18번 도로를 따라 6㎞ 가량 더 들어가야 한다.

함허 스님이 천하의 절경이라고 격찬한 계곡, 함허동천을 지나면 오른쪽에 정수사 입구가 나온다. 한여름 맑은 날이라도 어두운 그늘이 질 만큼 숲이 울창하다. 장마철이라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으나 초하루 법회가 있는 날이어서 인지 정수사 요사채는 신도들로 붐볐다. 대웅보전 서쪽옆에 있는 우물부터 찾았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뚜껑이 큼직하다.

바가지로 윗물을 떠 맛을 보았다. 무거운 듯 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좋은 물은 냄새가 없다. 맑고 차다. 칼슘 칼륨 규소 등 미네랄성분도 적당한 듯하다. 물을 펄펄 끓여 녹차, 발효차 등 여러 가지 차를 우려 보았다. 끓이지 않은 찬 물 그대로에도 우려 보았다.

정수사 물맛은 결코 허명이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다신전 품천편의 돌샘의 물, 석중천의 맑으면서 부드러운 물맛이 바로 이 물맛이 아닐까라는 느낌이었다.

물이 찻잎속에 파고 들어가 똘똘 뭉쳐있는 차의 진을 풀어 내면서 차의 진미를 우려내는 듯했다. 일행중 한명이 물맛을 보더니 거문고의 무거운 저음, 자연의 소리와 화음이 되는 부드러운 가락의 물맛이란 뜻으로 「금운」이라고 이름 지었다.

주지인 지현 스님은 『전국에서 최고라는 물이 정수사 물앞에서는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로 일품』이라며 은근히 자랑을 한다. 『유명한 정수사 대웅보전 문짝에 조각되어 있는 화병에 꽂인 연꽂과 모란꽃이 시들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화려함을 자랑하는 것도 이 석간수 때문일 것』이라는 운치있는 농까지 했다.


「한잔의 차는 한조각 마음에서 나왔느니

/ 한조각 마음은 한잔의 차에 담겼네

/ 이 차 한잔 맛보시게

/ 한번 맛보면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긴다네」

(일완다출일편심 일편심재일완다

당용일완다일상 일상응생무량락)


「이 차 한잔에 나의 옛 정을 담았구려

/ 차는 조주 스님 가풍이라네

/ 그대에게 권하노니 한번 맛 보소서」

(차일완다 노아석년정

다함조로풍 권군상일상)


함허는 사형인 진산과 옥봉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영전에 향과 차를 올리고 이 게송을 지었다. 오늘의 차인들이 즐겨 낭송하는 유명한 차게송으로 자리잡고 있다.


◎ 정수사 약사

정수사는 서기 639년 선덕여왕 8년 회정 대사가 창건했다. 회정이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뒤 동쪽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삼매 정수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며 창건한 것을 1426년 세종 6년 함허 스님이 중창했다. 대웅보전은 보물 161호다. 대웅전 정면 문짝은 꽃병으로부터 꽃이 피어나간 모양을 조각한 꽃창살로 유명하다. 좌우 두짝 문은 정자살 창호로 되어있다. 꽃창살의 화려함은 양쪽 협칸의 소박한 격자창호로 더욱 돋보인다.<김대성 편집위원>


◎ 알기쉬운 차 입문

/무더운 여름엔 물붓고 차 넣는 ꡐ상투ꡑ가 제맛

보통 차를 끓인다고 하거나 차를 탄다고 하지만, 오늘날 잎차는 끓인다기보다는 우린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차를 탄다는 표현은 마치 인스턴트 커피나 분말 등 여러 대용차를 물에 붓고 저어서 마시는 방법을 일컫는 말인데, 가루로 만든 가루차(말다)를 낼 때 비교적 적당한 표현이다. 그리고 차를 달인다는 표현은 마치 한약을 달이는 것처럼 차와 물을 같이 넣고 끓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같이 차와 물을 같이 끓이는 옛 차법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차는 물을 먼저 끓인 뒤 마른 찻잎에 부어서 우려낸 것이다. 차를 일본에서는 센짜(전다)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파오차(포다) 또는 이엔차(엄다)라고 하는데 센차의 「센」은 물을 끓인다는 말이고 「파오」는 거품, 그리고 「이엔」은 물에 적신다는 표현이다.

차와 물을 차그릇에 넣는 것을 투다라고 하는데, 순서에 따라 상투, 중투, 하투로 구분한다. 상투는 물을 넣고 차를 그위에 넣는다는 뜻이고, 중투는 물을 반쯤 넣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물을 넣는다는 뜻이며, 하투는 차를 먼저 넣고 물을 붓는다는 뜻이다. 상투는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 하투는 추운 겨울에, 중투는 봄가을에 적당한 방법이다. 여름에는 물을 식혀 사용한 옛 차인들의 태도에서 차한잔을 잘 우려내는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외부 온도에 의해서도 차맛이 미묘하게 변화한 것을 알아낸 옛 차인들의 섬세함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에는 차를 넣고 물을 넣는 하투법이 널리 쓰인다.

외부 온도에 따라 차맛이 바뀌듯, 차에 직접 닿는 물의 온도는 차맛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차마다 만드는 방법이나 보관 상태 그리고 개인의 기호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물의 온도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변화를 읽으며, 차의 다양한 맛을 수용할 때 차향기와 함께 우리의 삶은 깊어 질 것이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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