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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7】소요산 자재암 원효샘(차따라:17) |
【0017】소요산 자재암 원효샘(차따라:17) 한국일보 97.08.26 22면 (문화) 기획․연재
◎ 단기운이 휘도는 1,300년전의 비수 /허목의 원효폭포는 사라졌지만 차의 정기를 금세 되살려내는 젖같이 맛있는 찬물은 유유히 동양 3국 불교계의 거인인 원효스님은 차의 달인으로서도 차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절을 세웠고 하나같이 좋은 찻물이 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1번지,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1,300년전 원효스님이 이 물로 차를 달여 마시며 수행한 곳으로 찻물로는 손꼽히는 명수이다. 이곳에는 신라 고려때는 물론 조선중기까지도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말부터 차문화가 쇠퇴하기 시작한 탓인지 내로라 하는 차인들이 다녀간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서울에서 100리, 동두천시가지를 북쪽으로 2㎞가량 벗어나면 오른쪽에 소요산 입구가 나온다. 서울에서 가까운 명승지여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자세하다. 소요산 들머리 주차장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30여분 걸으면 일주문과 원효폭포, 원효대가 차례로 눈에 들어 온다. 원효대를 오른쪽으로 돌면 자재암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60년대말까지만 해도 가파른 벼랑위의 아슬아슬한 길이어서「발을 포개야」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한다. 지금은 바위 절벽에 단단히 축대를 쌓아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탄탄하게 깔린 계단을 얼마 오르지 않아 자재암에 이른다. 350여년전 숙종때 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의 문집「미수기언」의 「소요산기」는 「폭포옆 높이 10여인(1인은 8척으로 약 2.4m)이나 되는 벽에 비스듬히 걸린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면 원효대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소요사가 있다」고 했다. 지금 원효대 왼편의 나지막한 폭포를 원효폭포라고 부르지만 폭포의 위용은 없다. 폭우가 쏟아지면 모르지만 바위 사이로 졸졸 흘러 내리는 물을 폭포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낯간지럽다는 느낌이다. 수백년전에는 수량이 많아 장대한 물줄기를 떨구었던 폭포가 지금은 이런 초라한 모양으로 남은 것일까. 「자재암 동쪽 모퉁이에서 폭포 구경을 하는데 절벽 위에 5, 6장(1장은 약 3m)이나 되는 큰 바위가 서 있고 암벽사이 돌구멍에서 샘물이 졸졸 흐르는데 이것이 원효샘이다」 허목이 묘사했던 대로 지금 자재암 동쪽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바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옥류폭포가 있고 그 왼쪽에 끝이 뾰족한 촛대절벽이 보인다. 그 절벽 아래에 원효스님이 도를 닦던 자연석굴이 있고 석굴속 바위틈으로 흐르는 샘물이 바로 원효샘이다. 샘물이 솟아 나오던 석굴은 지난 80년 입구를 막아 나한전 기도처로 만들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 가면 바닥에는 깨끗한 대리석이 깔려 있다. 샘물이 흐르던 석굴의 끝부분에는 돌을 깎아 만든 제단이 있다. 그 위에 부처를 모시고 주위에 16나한을 둘러 세워 「영산회상」을 재현해 놓았다. 불상 뒤 바위틈에서는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석간수가 흐른다. 이 물은 대리석 바닥 아래 묻어둔 파이프를 타고 나한전 입구 오른쪽으로 흘러 간다. 돌을 조각해 만든 용의 입에서 물이 흘러 나오도록 해 놓고 여기에 「약수정」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고려때의 시인 백운 이규보(1168~1241)는 이 물맛을 「젖같이 맛있고 차갑다」고 했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물을 나일론 끈에 매달린 플래스틱 바가지에 가득 담아 마셔 보니 역시 예사 물맛이 아니다. 무색 무취 무미 등 찻물의 기본을 고루 갖추고도 마시고 나면 단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그런 물이다. 800년전 이규보가 맛보았던 물맛이나 350년전 허목이 맛본 물맛이 이랬을까. 자칭 초보차꾼이라는 정광스님은 자재암에 온 지 5년째. 간디스토마에 걸려 약을 잘못 먹고 초죽음이 된 스님은 이 물 덕분인지 씻은 듯 병이 나았다고 했다. 동료스님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차맛을 배우고 있다는 스님의 두어평 남짓한 방에서 차대접을 받았다. 차는 지리산쪽에서 만들어진 일반 식당용으로 보리차처럼 가볍게 마시는 「무거리차」, 그것도 지난해에 딴 한물 간 것이었다. 좋은 물에 어울리는 좋은 차라면 얼마나 좋을 것일까 하는 바람도 마음뿐, 「무거리」든 뭐든 주인이 내놓는 차를 가지고 사족을 달 형편이 아니었다. 찻주전자에 차를 듬뿍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일단 따라 낸 다음 그 물은 버렸다. 그리고는 어지간히 식힌 물을 주전자에 붙고는 약간 뜸들여 우려냈다. 「무거리」맛이 아니었다. 농도는 약했지만 지리산 녹차맛을 풍기고 있었다. 수돗물이나 다른 물을 써서는 이런 맛이 날 리 없다. 원효샘의 물이 지리산 차의 정기를 되살려 내고 있었다. 좋은 물이 어떤 것인지를 말없이 보여 주었다. 『어떻습니까, 차맛이 쓸만 하죠?』 스님은 결코 초보차꾼이 아니었다. 허목은 원효샘의 물로 달인 차맛에 대해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400년이나 앞서 이곳을 찾았던 이규보의 시로 대신했다.
「산따라 위험한 다리 건너/ 발을 포개며 좁은 길 걷네 / 원효가 일찌기 절을 지었네 / 신령한 자취는 사라지고/ 초상만이 흰 비단폭에 남았구나 / 차 끓이던 샘에 찬물이 고여/ 마셔보니 젖같이 맛있네 / 이곳에 예전에 물이 없었다면/ 중들이 살기 어려웠을 것인데 / 원효가 와서 거처하매/ 단물이 돌구멍에서 솟았네」<김대성 편집위원>
◎ 알기쉬운 차입문 /빈속에 ꡐ짠ꡑ차를 한꺼번에 마시면 어지러움 느낀다 차꾼들은 차가 진한 것을 「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독히 진한 차를 마시는 차인을 들라면 단연 통도사 극락암 명정스님이다. 스님의 차맛을 본 차인들은 누구나 「짜다」고 한다. 입천장과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이다. 소금을 넣는 것도 아닌데 짜다고 표현하는 것은 예전에 차를 끓일 때 소금을 조금씩 넣던 풍습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광(광)은 커피를 끓일 때 소금을 약간 넣어 단맛 내는 걸 돕는다고 한다. 이를 중국에서는 농담으로, 일본에서는 농박으로, 서구에서는 강유(strong or mild)로 각각 다르게 표현한다. 그런 표현의 차이를 음미하면서 차를 마시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다. 차를 진하게 마시든, 싱겁게 마시든 자신의 기호에 맞춰 하는 것이지만 건강한 차생활을 위해서는 하루에 마실 차의 양을 정해 두고 마시는 것이 좋다. 일본측 자료는 하루 1.5ℓ정도를 권하고 있다. 이를 다시 차의 양으로 환산하면 한번 차를 마실 때 150㎖의 물에 2~3g의 차를 넣을 경우 20~30g이 된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우리의 경우 아직 뚜렷한 기준은 없고 하루에 서너차례 나누어 마신다는 정도로 돼 있다. 차를 오래 마실 수록 점점 더 진한 차맛을 찾게 된다. 한꺼번에 너무 진한 차를 빈속에 마시면 어지러움증을 느낄 수 있다. 속쓰림증을 호소하는 예도 있다. 이는 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과 카테킨이 지나친 각성작용을 하거나 위액분비를 촉진한 결과이다. 중국인들이 진한 차를 즐겨 마시는 것은 기름진 식사 때문이다. 차를 마실 때 땅콩과 같은 견과류를 곁들이는 것도 위를 보호하려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진한 가루차를 마실 때 먼저 다과를 먹는 것 또한 단순히 차맛을 돕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랜 차생활에서 나온 그런 지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루에 차를 몇 잔 마시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차맛과 그 속에 담긴 멋을 즐기는 일이다. 차를 몇 년 동안 마셨다거나 얼마만큼 마셨다거나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차생활은 차맛과 차멋을 익히며 삶을 건강하고 향기롭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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