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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2】강릉 오죽헌과 율곡 이이(차따라:22)

【0022】강릉 오죽헌과 율곡 이이(차따라:22)

한국일보 97.10.07 22면 (문화) 기획․연재


◎ ꡐ제상에 차 올려야ꡑ 가르친 해동공자

/그가 쓴 ꡐ격몽요결ꡑ 부록에 ꡐ술아닌 차를 올린다ꡑ 적고 그 절차를 상세히 설명

/그러나 수백년 세월 탓인가 매년 지내는ꡐ율곡제ꡑ에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보물 165호인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이 해동공자로 추앙받은 율곡 이이(1536~1584)를 낳은 곳이다.

강릉은 신라의 화랑들이 차를 마시며 자연을 벗삼던 한송정과 경포대, 율곡이 즐겨 찾던 해운정 등 차유적이 그대로 남은 차의 고장이다.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율곡이 차와 가까웠던 것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율곡이 42세때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저술한 학습교재 격몽요결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인조(1623~1649)임금이 왕명으로 전국 각도의 향교에 비치토록 한 국민 교과서였다. 이 책의 부록 제의초는 복잡한 제례의식을 누구나 알기 쉽게 간추린 의식서로 전통 제의에 어두운 현대인들에게도 훌륭한 길라잡이가 된다.

특히 「제례나 차례때 차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전통차례와 예절을 기본으로 하는 오늘의 차인들이 눈여겨 두어야 할 대목이다. 오래전부터 거듭돼 온 「제상에 차가 올라야 한다」 「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논란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고 있다.

제의초의 「참례의」(설, 동지, 초하루, 보름에 올리는 차례)편에는 「주자가례에 따르면 술을 올리지 않고 차를 올린다」(안가례망일칙불설주지설다)고 분명히 밝히고는 「그러나 지금의 국속에는 차를 쓰지 않는다」(금국속무용다지례)며 분향만 하라고 했다.

당시는 차가 귀해 백성들마다 제례에 차를 사용할 경우 막대한 양이 필요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때였다. 우리나라 풍속에 차를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수입에 따른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한 것일 뿐 차를 쓰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대신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올리는 제례인 「시제의」에는「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 돌아간 부모의 신주앞에 나누어 올린다」(주인주부봉다)고 했다. 또 돌아 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의에서는 「음식을 권하고 사당 문을 닫고 조금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는 차를 올리고 신을 보낸다」(유식합문계문진다사신)며 차를 올리도록 했다.

한편 묘제의에서는 「종헌후에 국을 내리고 물(뜨거운 물이나 숭늉)을 올린다」(종헌후철갱진숙수)며 묘제에서는 물을 올려도 무방하다 했다. 또 토지신에게 올리는 간단한 제례에는 「음식과 차를 올리지 않는다」(무유식진다지의)고 했다. 차를 올릴 때와 올리지 않을 때

를 분명히 가리고 있다.

율곡은 격몽요결 7장 제례편에서도 「오늘날 풍속이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를 지내는 법이 집집마다 같지 아니하니 매우 가소롭다. 하나로 통일시키지 아니하면 끝내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져 오랑캐 풍습으로 돌아갈 것을 면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제사의 예법을 적고 그림을 만들어 두었으니 자세히 살펴 이대로 따라 행할 것이요, 만일 어른들이 반대하면 간곡히 설명을 드려 바른데로 돌아가기를 기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율곡의 생각을 가장 극명하게 계승하고 있는 것이 율곡의 직계 문하생 장현광(1554~1637). 그가 제자에게 답한 편지에서 「속인이 제사를 지낼 때 제상에 차를 올린후 밥을 조금 떠서 차에 담그는 것은 올바르게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다. 점다하여 끝내야 한다(점다이기가야)」고 하였다. 밥을 조금 떠서 차나 숭늉에 담그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묘제때 차대신 숙수(숭늉)를 쓸 수 있다는 율곡의 의견에 반대, 다탕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고종때 대원군이 간행한 「사례찬설」에는 율곡의 글을 인용해 「국을 치우고 주인과 주부가 각기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차를 받들어 놓는다」고 해 조선말까지 제례에 차를 올려 왔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한글사전에 차례는 「음력 매달 초하루날과 보름날과 명절날 조상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로 밝히고 있다. 우리의 의식중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조상을 모시는 제사였다. 제사는 효도의 연장으로 누구나 엄격히 지켜야만 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이런 제례에 차를 올리는 것을 봉차 헌다 점다 진다 행다례라 했다. 조선시대 이전 삼국시대부터의 관습이었다.

차례란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기록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제사의 의미보다는 외국사신 접대, 선왕의 제례, 왕실 생일이나 회갑연 등 주요행사의 의식이란 뜻으로 쓰이다가 조선 중기 이후에는 제사의 의미로 변질되면서 차대신 술이나 정수 또는 숙수를 쓰게 되었다. 차로 지내던 차례는 형식적이 되어 단순한 제례의 의미, 차를 올리지 않아도 차례라는 말이 곧 제사의 의미로 변질돼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율곡에 대한 저서를 집중연구하고 있는 강릉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정항교씨는 『제례에 차를 쓰게 했던 율곡 선생이지만 율곡 선생을기리는 율곡제의 제상에는 정작 차가 올라가지 않고 있음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며 『오는 26일 36회째 율곡제때 사당에서 치르는 차례에는 강릉 향교 어른들에게 차를 올리자고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성 편집위원>


◎ 알기쉬운 차입문

/잘못 보관한 차는 건강 해칠수도

/포장열때 생산일자 확인을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차는 포장된 외형상으로는 잎차와 티백으로, 그 내용물로는 차만으로 된 녹차와 홍차, 현미가 추가된 현미차로 대별할 수 있다.

물론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오룡차와 같은 반발효차가 생산, 유통되고 있다. 「달빛차」, 「정금」, 「자하」, 「동방차」 등 한동안 끊겼던 발효차의 맥을 되살린 것들도 잇달아 나와 한결 차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어떤 차를 어떻게 마셔야 좋을까. 어떤 경로로든 차를 구했으면 우선 그 차를 마셔 보는 것이 좋다.

녹차는 보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차를 잘못 보관해 기한을 넘기게 되면 차맛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좋은 차는 마실 수록 건강에 좋지만 잘못된 차는 차적이란 예상치 못한 병을 유발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차포장을 열 때 먼저 생산 일자와 생산지를 확인하도록 하자. 옛 문헌에는 녹차는 1년 넘게 묵으면 마시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포장기술의 발달로 유통기간을 2년으로 표시하고 있다.

생산 일자가 곡우인 4월20일 전후가 되면 아주 어린 찻잎이고, 입하인 5월5일은 여린 찻잎, 소만인 5월20일 전후가 되면 비교적 다 자란 큰 잎의 차이다. 물의 온도는 어린 찻잎보다 다 자란 찻잎 쪽을 더 뜨겁게 해야 한다.

또 보성, 하동, 광주, 강진, 제주 등의 지명이나 사찰 등 생산지 명칭이 언급돼 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나온 차는 찐차(증차)가 주종인데 60~70도의 물에 우리는 것이 좋다. 이 지역에서 드물게 만들어지는 덖음차나 벌교, 하동이나 사찰 등지에서 만들어지는 덖음차는 뜨거운 물이라야 제맛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덖음차를 처음 우릴 때는 비교적 낮은 온도인 60~70도에서 우려 내고 두번째부터는 70~80도의 「열탕」으로 우리기도 한다. 차의 푸릇한 겉맛과 은은한 속맛을 다 놓치지 않는 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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