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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汝窯)

[출처 : http://www.aichado.com/ 비봉 김진홍]

 

중국의 오대명요 - 여요(汝窯)

여요는 중국 송대오대명요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여주에서 소성되었기때문에 여주요 또는 여요로 불러왔던 것에 불과하였다. 또다른 5대명요중의 하나인 정요의 도자기 기명의 구연부에는 그릇을 엎어서 소성하였기 때문에 유약이 없다. 남송시대의 기술에 따르면 북송시대에는 그래서 왕실에서 이를 싫어하여 여주요에 명하여 모두 유약을 입힌 청자를 만들게 하였는데 그로 인해 당시의 여요가 중국의 북방청자 생산지중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요에서 제작된 기물들은북송의 궁정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설치한 가마 즉 관요의 제작품인 어기였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도 정성스럽게 제작되었다. 태토는 세밀하고 부드러우며, 색은 속칭 [향회태(香灰胎)]라 불리는 香灰色(흰듯한 회색)이다. 태토중에 미량의 동분(銅分)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환원염에서 소성될경우 담홍색을 띠게 된다. 이것이 여요의 도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제일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는데 빛을 받으면 유약를 투과하며 미세한 홍색이 떠오른다.

여요에서 제작된 도자기의 유색에 관해서는 천청(天靑), 분청(粉靑), 란청(卵靑) 등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크게 분류하면 심천청(深天靑)과 담천청(淡天靑)의 이색으로 분류된다. 이 두색의 차이는 소성상태의 차이에 따라 야기되는 것이며 의도적으로 이분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대체적으로 전세되고 있는 여요기의 형태는 존(尊), 병(甁) 등 소수의 감상용의 목적으로 전대의 기물들을 모방한 제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분(盆), 완(碗), 반(盤), 접( ), 잔탁(盞托), 세(洗), 구( ; 화장용상자) 등 일상용 기명들이다. 관요계통의 가마에서 많이 제작되는 필통, 연적, 비각(臂 ; 팔걸이), 벼루 등의 문방구는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여요에서 제작된 기물은 이미 남송초기에 이르러 귀중시 되고 있는데 각종 기록들에 남송초기 왕에게 헌상한 자기중에 여요기가 있었다고 하므로 당시에 이르러 여요가 받았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남송, 주휘(周輝)는 소희연간(紹熙; 1190-1194년)에 저술한 [청파잡지(淸波雜志)]속에서 당시 이미 보기 어려웠던 여요기를 [최근 가장 얻기 힘들다]고 한탄하였다.

이와 같이 그 작품이 적은 이유는 역시 5대명요중의 하나인 북송의 官窯가 정화연간(政和; 1111-1118년)에 이미설치됨에 따라 여요가 폐요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여요의 개요시기는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汝州新窯器]라는 말이 나오므로 여요의 개요는 선화(宣和) 6년에 가까운 시기라고 볼 때 여요의 활동시기는 현재로서는 특별한 다른 사료나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중국학자들의 견해대로 11세기말부터 12세기초경의 극히 짧은 기간동안이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해설> 청자반(靑瓷盤) 여요(汝窯)작 북송연간(960-1127년), 높이 2.9cm, 구경 17.1cm, 굽경 9.1cm 상해박물관소장, 측벽을 직선형태로 뻗어구연부로 펼친 반으로서, 분청유(粉靑釉)가 걸쳐져있다. 청색빛속에 옅은 녹색빛을 느낄 수 있고 아주 고아한 느낌을 주는데 절정기의 고려청자에서도 볼수있듯이 5개의 작은 눈받침자국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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