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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기의 역사

[출처 : http://www.aichado.com/ 비봉 김진홍]



중국차를 마시고 즐기는데 있어 또다른 즐거움의 하나는 다호를 비롯한 각종 다기들을 수집하는 재미도 빼놓을수 없을 것이다. 중국차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러한 다기는 오늘날의 다기들과 완벽하게 같을 수 는 없겠지만 그만큼 차만을 위한 도구의 역사는 오래된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차와 관련한 다기에 관한 최초의 서술은 서한(기원전 206년-기원전8년) 시대의 왕포(王褒)가 쓴 동약(童[사람인변 변이 있음)約)이라는 일종의 노비계약문서와 같은 것에 기재된 내용으로서 그곳에 가복(즉 집의 하인)으로서 해야할 계약내용중에 다구를 이용하여 차를 팽다하는 일체의 관리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으로 오래된 기록이라 그 형태는 알수 없다하더라도 이로부터 출발한다.

당대에 이르러 귀족들은 금과 은 그리고 주석이나 동과 같은 금속류의 다기를 이용한듯하지만 일반민중은청유나 백유를 씌운 도기성 제품들을 이용한것 같다. 당시에는 금속류자체가 실상 권위의 상징이었으므로 오늘날과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던것 같다.

송대에 이르러는 우라가 천목이라 알고있는 건요산의 이른바 건잔 형식의 다완이 등장하는등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다도는 고려시대에도 함께 부흥하였듯 많은 화려하고도 훌륭한 명품다기들이 도자기로서 구워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명시대에 이르러 차는 또다른 변신을 이루어 이제까지 주로 단차형식의 차들이 산차와 같은 형식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또 백자의등장과 더불어 많은 다기들이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유명한 의흥다호도 실상 이시기부터 서로 차의 종류나 음다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청대의 다기는 현대의 다기에 거의 유사한 형식으로 정립되었다고 볼수있는데 유명한 관요라 할수있는 경덕진의 자기와 의흥의 도기(자사호)가 의도경자(의흥의 도기 경덕진의 자기)라는 용어를 만들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고, 또한 지금과 같은 우리는 전차는 건륭제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하였다고 할 수있다.

아울러 현대의 중국은 우리와 유사한 일제침략기에쇠퇴하는듯 하였으나 홍콩과 대만과 같은 해외교포들의 음다습성은 더욱 고급화를 촉진하고 많은 다예를 지금에 와서 계승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른 다양한 다기가 지금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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