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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화(茶花)에 대하여

[출처 : http://www.aichado.com/ 비봉 김진홍]



다화(茶花)라는 말은 차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광의적인 해석으로는 차와 관련된 꽃이 될 것이며, 협의적인 해석이라면 차실내에서 사용되는 꽃, 그리고 차를 우리고 마시는 그 순간을 위하여 장식되는 꽃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이 다화라는 말의 어원은 물론 일본이라 할 수 있다. 당초부터 우리나라의 기록속에 다화라는 말은 필자가 알기로는 찾기 힘들다. 다만 차를 마시고 음미하던 우리의 옛 선조 다인들의 다시(茶詩)나 다부(茶賦)속에서 꽃이름이 등장하거나 그 풍취속의 풍류에는 당연 꽃은 자연과 함께노래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차를 마시는 다도문화속에 꽃이라는 것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다만 한일간의 문화적인 차이는 엄격하게 이러한 차를 마시는 다도문화속에서도 그 맥을 달리한다. 때문에, 당연 이 꽃장식의 발달사도 그 맥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바로 이전 역사인 조선시대와 일본의 에도시대를 비교하여 볼 때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과 그 정치지도세력의 차이, 아울러 문화지배계층의 형성과정 등 다양한 문화적배경상의 특질로 인하여 우리의 다도문화가 일본처럼 기록으로 남겨지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문화속에 다도가 없었다고 강변하는 일본인들의 말에 귀기울일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문화란 이미 존재하는 것이지 표현하여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한일간의 역사적 배경속에서최소한 풍류를 논한다고 할 때 역시 풍류는 문인문화이지 무사문화가 아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일본의 문인문화라 할 수 있는 전차도는 실상 에도중기이후로부터 역사적배경을 설명하긴 하지만 오늘날 다도라는 형식화된 것은 불과 100년의 역사를 가지는데불과하며 활성화된 것은 50년안팍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다도문화도 늘 존재하고 일상생활속에 있었음에도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적 관련 문헌들이 부족한 탓에 작금에 이르러 많은 연구가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였고 그러한역사적 기록에서볼 때 전차도에 관한한 우리가 더욱 높은 상류문화속에서 녹아있던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현재와 같이 가루차를 점다하여 마시는 말차도에 있어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50년안팍 굳이 세밀하게 한다면 최근 20년전후부터 본격화되어 일반대중화의 길을걸었다고 볼수있겠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국가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일본의 전차는 에도시대내내 상류계층인 무사계급보다는 그 밑의 일반 대중역할을 할 수 있는 하위 사무라이계층이나 직인계층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그것은 우리의 음다문화와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지만, 상류계층의 무사문화는 살벌한 도검이 난무하는 시대적 상황하에서 비록 에도시대가 토쿠가와 막부라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막부정치를 하였다 하더라도 영주간의 사소한 분쟁은 늘 있어왔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실외의 놀이 즉 풍류가 자연속에서 이루어지는데는 한계가 있었으며, 오늘날 요정정치의 밑바탕이 되었다고도 하는 다실속의 풍류, 다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의 다도라 할 수 있는 말차도 중심의 다도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특징이라할수있겠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무사가 아닌 문사문화이며 시인묵객들이 좁은 집안에서 아둥바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으로의 동화를 위하여 많은 명승고적지에 설치된 정자를 찾아 그 속에서 시를 읊고 시조를 노래하며 그속에서 차를 음미하는 풍류를 즐긴것이라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보면 그러한 문화적차이로 인하여 우리의 다도와 관련한 기록자체가 남겨지기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른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한일간의 다도의 기본적인 입장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이제는 반대로 점차 우리의 다도는 실내중심화되어 가고 일본의 경우는 실외경향을 추구하는 형태로 새로운 전기 내지는 시도를 추구하는 시기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몇몇 다인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경향이 나왔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실질적인 우리의 생활문화가 점차 개인중심화되고 공동체적인 것 보다는 실내에서 몇몇 지인을 모아 담소하는 형태로 발전해 나가면서 다실을 꾸미는 자신만의 차문화공간을 가지고싶어하는 형태가 나타나는 듯 하며, 일본의 경우에는 다실을 가진 수많은 계파별 다도유파(특히 말차도중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일반식당이나 자유로운 다구를 중심으로한 생활다도의 시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일본의 들차회 야외다도회의 개최등은 당초부터 실내중심의 다도였기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분화현상이라면 우리는 원래부터 야외다회가 중심이었다고 할수있었음에도 최근에는 들차회라는 행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 조금 마음속 느낌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렇듯 장황하게 서두를 끄집어낸 것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하에 있었기 때문에 다화라는 하나의 형식이 정립되고 탄생하는 것에는 다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실내에서 자연의 상태를 느끼며 차를 마시고자하는 일본다도의 한 맥락속에서이해할수있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나타난 다화는 물론 일본다도에서 즐겨 사용하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하나이레(花入; 화병)에 한송이 꽃을 장식한 전형적인 장식기법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화는 통상 우리의 화병에 꽃는 꽃꽂이를 뜻하는 하나이께(花生)라는 화병과 그 의미를 달리한다. 즉 다실속의 꽃의 장식은 자연을 심고 자연을 옮기는데 치중하는 만큼 가장 자연스런 꽃 그 상태 그대로 병이나 담는 용기에 그저 넣는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며, 하나이께라는 표현은 공간개념에 상관없이 그 용기속에서 가장 그 꽃다움을 창출하는 그 꽃을 살려 가장 화려함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그러한 용기를 화입 즉 하나이레가 아닌 화생 하나이께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다화의 장식기법은 일본의 역사기록으로 보아 물론 그 앞서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현재의 말차형식의 다도가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16세기 후반기부터이며 천리휴라는 일본의 다성이 본격적인 장식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꽃꽂이의 역사는 실상 그이전의 시대에도 물론 우리나라의 시대에도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는 이 다실속의 다화장식이 면면히 역사속에서 내려오며 분파되어 많은 꽃꽂이 유파를 만들며 하나의 도 즉 화도(華道)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화는 그렇기 때문에 앞서 잠깐언급한 꽃꽂이용 화병과는 달리 다실 자체가 은은한 자연미를 풍기게 설계되고 조용한 향취를 느끼게 하기 위하여 화려한 색상의화병이 아닌 주로 토기류나 일본의 비젠과 같은 석기형식의 stoneware 그리고 자연회유가 씌여진 자연미넘치는 각종 도자기류가 많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다화의 역사는 그러한 의미에서 차를 마시는장소에 꽃이 장식되어있었다면 마땅히 다화로 쳐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기록을 아직은 연구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다만 필자는 그러한 다화장식의 예는 굳이 찾기위한 하나의 힌트는 다름아닌 문인화속에서 찾을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극소수의 힌트이긴 하지만 최소한 조선후기시대의 각종문방구류를 그린 서화속에서 꽃꽂이한 장식의 예는 많이 찾을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다성이라 일컫는 초의선사가 차를 마시던 그 시대는 추사나 다산과 같은 많은 지배층의 문인들이 차를 음다함에 있어서 주로 사랑방과 같은 차를 마시거나 접객을 하기위한 별도의객실이 있었음은 불문가지이며 그러한 공간속에서 문방사우가 존재한 그림속에 꽃꽂이의 그림이 있음은 당연 그러한 꽃꽂이가 함께 어우러진 공간속에서의 다도생활을 대변할수있다고 볼수있기 때문이다.

다화란 그렇게 따지면 이제 더 이상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문화라고는 하기 어렵다. 다만 다화라는 말 그자체가 등장하는 것이 늦었을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기록된것만으로 이루어진것이아니며 기록이 아닌 해당 시대의 문화속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사실(史實)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다도사속에 다화란 있었다고 할수있겠다.

그러면 그 다화에 사용된 꽃에는 어떠한 것이 있었겠는가? 일본의 경우에는 꽃한송이를 장식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식의 것을 굳이 찾는다면 당시에 존재하는 한국의 야생화들을 중심으로 화병속에 담았을 것이므로 우리의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은 당연 그 달의 그 시기의 다화로 선택할 수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겨울과 같은 시기에는 우리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화분이나 분재용 도자들이 생산된 것으로 유추하여 볼 때 분재도 하나의 다화의 장식범위내에서 이루어졌을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도자산업은 지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는데, 다화의 장식은 꽃꽂이의 기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굳이 한송이를 꼽는다는 일본식의 원칙을 따를 필요는 없겠으나, 실상차를 마시는 다도생활속에서 자연을 느끼기에는 많은 화려한 꽃장식보다는 역시 한송이속에서도 자연을 음미할 수는 있다는 점에서 굳이 한송이, 두송이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때문에 앞으로 이 다화에 관한 분야는 많은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이나 도예가와 함께 다인들의 몫이며 그러한 한국적 실정에 맞는 어울리는 화병의 제작과 장식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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