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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다도 세트

[출처 : http://www.aichado.com/ 비봉 김진홍]



황금의 다도세트

일본 다도계에는 일본 다도사에 있어서 비교적 극적인 전설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몇가지 전설중의 하나로서 유명한 것이 일본 다도의 다성이라 불리고 있는 센노리큐(千利休)와 당시의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간의 다도구 특히 다완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토요토미히데요시가 보여준 일련의 다도행사등을 감안해볼 때 상징적인 것이며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전혀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일축할수도 없는 오대오의 비율인 것 같다.
어느날 히데요시가 황금으로 다실을 치장하고 모든 다도구일색을 황금으로 만들어 다회에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는데, 초청받은 당시 다도의 사범격이었던 센노리큐는 거무틱틱한 손으로 주물러 만든 하나의 다완(죠우지로우가 만든 쿠로라쿠다완)을 꺼내어 황금과 비교되는 소박함을 보여주자 매우 심기가 불편해졌고, 이것을 기화로 두사람사이가 멀어져 급기야는 임진왜란 발발 1년전에 자결하도록 명하였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이 에피소드의 진실유무를 떠나 그만큼 다도계에 나타난전설인 만큼 다성이라 추앙하는 센노리큐의 신성시 내지는 우상화하는데 많은 포인트가 맞추어진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말 그대로 황금의 다도세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만큼 그당시 최고권력층들이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초기의 일본다도의 성장과 와비사비라고 부르는 소박한 모습의 자연속의 미학을 탐구하는 다도의 완성이 모든 지배계층에 파고들지는 못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그것은 적어도 일본 에도전기에 해당하는 겐로쿠(元錄; 1680년대경)이후 급속적인 다서의 발간과 확대 부흥이후에 재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면면히 일본의 다도계는 소박함과 참인간됨에서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사치와 권위로 발전되고 다시 그것을 재차 부정하고 본연의 참된 다도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순환을 거듭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이 사진의 작품은 일본의 최고 권력집단이자 지배층이었다고 할 수 있는 에도시대의 장군가인 도쿠가와家의 3대장군인 도쿠가와이에미츠(德川家光)의 딸이 시집갈 때 가지고간 혼수용품중의 하나인 다도세트라 할 수 있다. 이중 다이스(臺子)라 부르는 이단의 장식대와 천목다완만 나무에 순금박을 입힌 것이며 나머지 도구들은 모두 각부위를 순금제련하여 이어붙인 것이다. 현재의 세토 나고야 지역에 해당하던 옛 오와리(尾張)의 도쿠가와가로 시집갔던 관계로 그 가문에서 대대로 보존되다가 현재 이 작품은 도쿠가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사진에나타난 각 도구들의 종류와 사이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금의 다도구 1세트의 사양]
순금박 장식대(일본명 臺子) 높이 70.4cm 가로 90.9cm 세로 41.5cm
순금 화로(일본명 風爐) 높이 24.6cm 지름 34.59cm
순금 가마(일본명 釜) 높이 18.6cm 지름23.0cm
순금물항아리(일본명 水指) 높이 24.4cm 지름 20.5cm
순금 표주박꽂이(일본명 杓立) 높이 22.6cm 지름 12.6cm
순금 개수그릇(일본명 建水) 높이 9.8cm 지름 16.1cm
순금 뚜껑받침(일본명 蓋置) 높이 6.4cm 지름 6.4cm
순금박 건요형잔(일본명 天目茶碗) 높이 6.7cm 지름 11.2cm
순금 잔대(일본명 天目臺) 높이 9.1cm 지름 15.0cm
순금 차통(일본명 茶入; 농차용) 높이 9.4cm 지름 7.4cm
순금 차통(일본명 棗; 박차용) 높이 8.0cm 지름 7.4cm
순금 부젖가락(일본명 火箸) 길이 29.1cm


이상이 총 세트이지만 이 사진에는 농차용의 차통인 차이레(茶入)를 장식한 관계로 박차용의 차통인 나츠메(棗)는 생략되었다.
간혹 도예가들중에 일본의 다도구세트는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 사이즈들을 염두에 두고 참고하면 될 듯 싶다.
이 작품들은 물론 사진이 작아 세밀하게 보이진 않지만 각 도구들마다 깨알같은 문양들이 조각이 되어 있어 화려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명품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물론이지만 당시 일본의 이러한 제련술과 연금술등의 수준으로 보아 필자는 이것 또한 임진왜란당시 건너간 우리의 금공(金工)들의 작품임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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