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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韓中日) 다도(茶道)의 동부동(同不同)

[출처 : http://www.aichado.com/ 비봉 김진홍]

아래의 글은 태평양 [설록]지의 2003년 3.4월호의 원고입니다만, 이후  절반으로 1회분으로 줄여 수록되었습니다. 당초의 원고 그대로가 아무래도 이해하기 쉬울것이므로 원문 2회분의 분량그대로 두번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비봉- 

한중일(韓中日) 다도(茶道)의 동부동(同不同) - 총론편(1/2)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은 예로부터 극동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양삼국으로서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상호간에 밀접하고도 빈번하게 문물을 교류하여 오긴 하였지만, 여타 구미제국과는 달리 적어도 100여년 전까지는 독특한 언어와 생활문화를 가진 채 각기 그 독자적인 문화사를 이루어 온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한중일 삼국간에는 일견 같은 듯하면서도 각 나라의 민족적인 사상이나 종교적 배경에는 무시하지 못할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사람들은 얼굴생김새나 언어 그리고 복식 등을 통해서도 상호간에 분명한 구분을 지을 수 있었고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서양인들의 눈에는 자신의 고향이나 본국의 역사속에서 접촉한 바 있는 동양 각국또는 동양인에 대한 경험이나 선입견 등의 지식하에서 그들이 동양삼국 사람들을 접할 때면  모두가 중국인 때로는 대한인 내지는 일본인으로 비추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만큼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동양삼국이나 그 나라사람들을 크게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그리 깊지 않은데 기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모든 문화나 사조에 대한 이해에 있어 사실 독자적인 측면에서의 이해란 그 깊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비교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칭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질수록 점차 나 자신이나 민족, 국가에 대한 이해나 성찰이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이나 타민족, 다른 국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고 또 그 평가척도의 눈높이도 점차 낮아질 수 있으며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비교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도의 정신적 세계에 몰입하고자 함을 목표로 추구하는 다도(茶道)문화야 말로 더더욱 서양인들의 눈에 비추인 동양삼국은 모두가 같은 것으로 보이게될 확률은 매우 높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 스스로 생각하기에 동양삼국의 다도는 같은 것일까? 비록 선문답은 아니지만 그 답은 맞기도 하며 또한 틀리기도 하다 할 것이다.
  최근 관심이 더욱 급속하게 고조되고 있는 차생활 내지는 다도문화와 관련하여 비록 짧은 지면이고 담기엔 무게가 너무 무거운 주제일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오랜 형제 국가들이라 할 수 있는 한중일 삼국의 다도문화를 가급적 객관적 시야에서 상호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중일 삼국의 다도문화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나가기에 앞서 독자여러분에게 한마디 언급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도라는 말이 일상주변에서 너무 요란스러운 행사를 한다거나 고가의 다기(茶器)가 아니면 큰일이나 나는 듯이 행동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하여 차(茶)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분들이 계신 것은 사실이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다도나 다례라는 말 자체를 듣기만 해도 심한 거부감을 느끼거나 알레르기반응을 상대방에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말로 표현된 [다도(茶道)]라는 문자 자체에 대한 의도적인 의식이 없이 그리고 자신의 인격수양과 자아각성이라는 거창한 표방을 굳이 빌리지 아니하면서도 묵묵히 차 자체를 즐거이 마시며 자신의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 시를 쓰거나 자신의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다인(茶人)--어쩌면 그들은 다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싫어 할터이지만--들이 더욱 많이 존재하고 있음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다도라는 타이틀을 걸어두고 그릇된 행동을 하는 일부 다인들로 인하여 다도계(茶道界)나 다도 자체가 비난받기도 하지만, 사실 다인이란 차를 통해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도(道)의 세계로 몰입하기 위해 자신을 수양해나가고자 하는 진행형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지 다인이라고 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거나 비판받을 행동거지를 일체 하지 않는 완벽한 인격수양체로서 완성형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인격이나 고도의 정신적수양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굳이 번잡다난한 현대사회의 세상사에 얽메이지 않고 심산유곡에서 말 그대로 도를 닦는 도인(道人)이나  깨달음을 이룬 불가의 고승 내지는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차를 마시고 애호하는 사람--차애호가든 다인이든 표현이야 아무래도 좋지만--의 한사람으로서 우리들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행동거지들이 눈에 뜨일 때마다 나를 비추는 거울로 또 나 자신을 더욱 수양해 나가기 위한 초석으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굳이 그런 이들에게 눈을 돌리거나 의식할 필요조차도 없지 않겠는가? 차라는 것은 단순한 기호음료라는 점만 생각해 보아도 이 이상의 것이 없다. 필자와 같이 글을 쓰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맑게 하는 등 여러 효과가 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한다거나, 콜라와 같은 청량음료는 유해운운하지 않더라도 이 땅의 선조들이 천년이상 마셔온 전통음료이고, 우리나라 땅에서 생산되는 훌륭한 농산품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를 무시하거나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 학창시절 학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과목의 공부를 소홀히 하였다는 기억이 있는 독자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다도라는 말에대한 거부감이나 시각상의 차이로 인해 그 자체를 소홀히 하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음료가 다름아닌 차라는 것은 재삼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소위 다도라고 하는 말 그 자체를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무릇 차라는 것의 본질은 기호음료이므로 자신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好不好)를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그저 즐기면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적어도 생활공동체라는 사회문화 속에서는 자신의 기호품이라 하여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될 법식이나 예의범절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며 동양삼국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한 경향이 짙은 편이다.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함부로 꼬나물거나 소위 맞담배를 피워대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도라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을 마심에도 큰 대접에 술을 담아 이것을 돌려가며 마시는 중국의 풍습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술잔을 비운후에야 술을 따르는 것이 예법인 우리나라, 상대방의 술잔에 술이 담겨있는 상태일 때 수시로 가득 채워주는 첨잔의 형식이 예의인 일본처럼 많은 생활속에 묻어 있는 문화적 패턴들은 각국의 오랜 역사적 배경과 각 민족의 시대별 사상적 조류를 바탕에 지닌 채 현재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유독 차문화라고 하여 그러한 예법이 없을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비록 차문화의 발달로 인해 생겨난 예의범절에 정도의 과부족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예의범절 자체가 전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동양삼국의 차생활이나 차문화를 일컬어 중국은 다예(茶藝)요, 우리나라는 다례(茶禮)이며 일본은 다도(茶道)라고 표현하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각기 차를 즐기는 유.무형의 형식중 한 단면만을 문자로 표현한 것 일뿐 그 한마디가 차문화 전부를 대변한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굳이 이와 같은 단편적인 표현법대로 말한다면 각기 중국에도 다례와 다도가, 우리나라에도 다예와 다도가, 그리고 일본에도 다예와 다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상대비교란 대개 공격적이거나 선행적인 어느 일방의 표현에 대한 반응 내지는 방어적 측면에서 그와 다른 점이나 특징 내지는 상대적 우수성 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와 대칭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시도가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는 경우가 많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결코 본질적인 차문화나 다른 문화적 사조의 차이를 구분짓는데는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 하겠다.(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아래와 마찬가지로 태평양 [설록]지 2003.3.4월호에 수록된 내용의 재편집과정에서 삭제되기 이전의 원고입니다.- 비봉 -

한중일(韓中日) 다도(茶道)의 동부동(同不同) - 총론편(1/2)

  따라서 가장 손쉽게 어떠한 문화사조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즉, 다도문화에 있어서는 차(茶)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 지름길이자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차를 직접 마시며 차문화를 생성시키는 사람과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활공간인 특정지역이나 기후 등과 같은 주변생활환경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려요소중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그러면, 우선 차에 대한 것을 먼저 살펴보자. 현대에 이르러 매우 다종다양한 중국차에 현혹되는 분들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실상 한중일 삼국 모두 차생산량이나 음다인구를 보면 녹차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차 하면 차의 특성상 스님들이 많이 애음하는 푸얼차(普 茶)나 화려한 중국다예를 보급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우롱차(烏龍茶)류를 떠올리긴 하지만, 생산량이나 중국인 전체의 차소비량 등을 감안하면 역시 롱징차(龍井茶)를 대표로 하는 녹차류라 할 수 있다. 이웃 일본에서 가루차를 이용한 말차중심 다도가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이 또한 녹차의 한 형태이며 일반 가정에서 마시는 차는 센챠(煎茶)라 불리는 녹차가 거의 대부분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독자여러분이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녹차가 주류임은 물론이다.
  차를 다관--중국에서는 차후(茶壺) 일본에서는 큐스(急須)라 부르지만--에 넣고 우리는 적절한 온도상의 차이를 단순히 생각해 보면, 같은 녹차라 하더라도  중국차가 뜨겁고, 한국차가 그 다음이라면 일본은 더욱 낮다. 이것은 단순히 제다(製茶)상의 차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차의 제조법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그 차를 마시는 주체이자 역사적으로 각국의 주 소비자였던 권력자나 지배계층에 있던 사람들의 차생활이나 차문화의 중심지역이 어느 곳이었는가 하는 것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국의 차의 제법은 그 차를 생산한 지역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어디까지나 차가 진상되어 마시는 이용자 즉 수요자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는 점에 우리는 더욱 유의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례로 고려시대때 사신으로 왔던 중국의 서긍(徐兢)이 기록한 견문기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속에는 고려인들의 까다로운 예법으로 인해 정작 차를 마실 때는 차가 식어 맛이 없더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곧이 곧대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가 자국에서 평소 마시던 차의 맛과 온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단해 볼 때 식었다거나 맛이 없더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말 그대로 이 표현은 차의 맛이나 온도의 판단을 절대적 기준이 아닌 차생활을 하는 사람의 주관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상대적인 비교일 뿐이다.
  이와같이 차를 마실때 가장 맛있게 그리고 그 차가 지니고 있는 특성에 가장 적절하게 다탕을 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은 결국 주된 수요층의 거주지역이나 생활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동양삼국의 경우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주 수요자이자 문화사조를 주도하였던 권력층의 주무대는 명청시대이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이었으며 중국 황실과 고관대작들의 차생활은 비교적 추운 지방이었던 관계로 높은 온도에서 뜨겁게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의 문화중심지였던 수도 서울은 일본의 에도막부나 궁정이 있던 도쿄나 교토에 비해서는 추운 지방에 속하지만 베이징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지역인 탓에 자연스럽게 차의 온도는 일본과 중국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동양삼국의 고급녹차를 정확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굳이 수치화한다면 대략 중국이 70-80도, 우리나라가 60-70도, 일본은 50-60도 정도가 적당한 추출온도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아울러, 그 제조법도 당연히 그에 걸맞게 연구 발전되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주변의 기후를 감안한 다면 실질적인 다탕의 온도는 어쩌면 비슷한 온도가 될지도 모른다. 
  한편, 일반 서민들의 차생활을 살펴보면 중국의 윈난(雲南)지역의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발효가 진행되고 보존의 용이성 등으로 인한 푸얼차가 그 지방의 식생활문화와 어우러져 생성 발전한 것이나, 우리나라 남부지역의 차산지를 중심으로 돈차(錢茶)가 보존의 용이성 등에서 서민의 지혜로 그 명맥을 유지해 내려오며 끓여 마시고 민간의약품의 역할까지도 수행해온 한편, 일본 오끼나와(沖繩)현의 부꾸부꾸차, 산간지방의 야마차(山茶) 등도 비록 주류는 아니나 차 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민들의 차문화로서 나름대로의 특성을 간직하며 꾸준히 각국 차문화사의 일각에 존재하여 왔다. 그것은 굳이 서민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차문화는 역시 그 지역적인 생활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동양삼국의 다도의 닮은 꼴은 가까이서 바라볼수록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세하지만 다른 면이 더욱 눈에 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예 동서양을 비교한다면 비교적 동양삼국의 특성은 서양과 비교하여 잘 드러나게 된다.
  서양 특히 영국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차가 궁정문화나 귀족사회로부터 점차 확산되어 일반인들에게 파급되어간 경로를 살펴보면 서양인들의 차문화는 그 생성과정과 음다방식, 그리고 그 이용에 있어서 비교적 동양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 쉽다.
  서양유럽 사회에서 집단주의나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주의와 같은 역사주의는 비교적 근세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특징으로서는 역시 극도의 개인주의 내지는 나(I)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각종 기호음료를 마신다거나, 새로이 유입된 생활문화의 전파과정에서는 늘 이러한 것들을 가교로하여 자신의 생활영역이나 활동범위를 확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래서 차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에도 유럽의 귀족들은 티파티(Tea Party)나 티타임(Tea Time)을 통하여 나를 중심 축으로 하여 여타 사회구성원과의 관계증진이나 교류를 확대해 나가려는 외향성(나→집단)을 강하게 지녔고 또한 그 수단으로서 차가 이용되면서 서양의 차문화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동양삼국은 전통적인 공동체 중시풍조하에서 오랜 역사성과 전쟁 등을 통한 외부와의 정치 문화적 충격을 받는 과정에서 나(I) 보다는 우리(We)가 강조되는 운명공동체속에서의 나로 인식하는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경향은 차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집단이나 사회, 나를 중심으로 둘러싼 많은 세상살이의 번뇌나 복잡함을 떨치고 나를 찾고 나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각성하고자 하는 내향성(집단→나)을 강하게 띠면서 차문화는 자연스럽게 다선일미의 정신성이 강조되는 다도문화로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물론 동양의 전통적인 유교나 불교적 사상은 상대를 존중하고 귀한 것을 서로 나누려는 과정에서 차문화도 각기 문인다도, 승가다도, 궁정다례 등과 같은 유무형의 접대성 사교형식으로도 발전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에서는 비록 겉으로 표현된 모습의 특질이 중국의 다도가 기(技)와 예(藝)로, 우리나라가 의(儀)와 예(禮)로 일본이 형(形)과 식(式)으로 나타났을 지라도 다선일여, 다선일미와 같은 차를 마시며 도를 추구한 깨달음의 과정으로서의 차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역시 집단속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향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는 거의가 일맥상통하다 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한중일 동양삼국의 다도를 개괄적인 측면에서 상호 비교해 볼 경우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항을 다루어 보았다. 다음호에서는 좀더 각론적인 부분중 많은 이의 관심이 있는 부분인 차를 마시는 용기라는 정의하에 다완에 대하여 삼국의 비교를 논의 해보고자 한다.

*본고는 태평양 [설록차]지 5-6월호에 연재된 내용입니다. 원고의 인용시에는 태평양 [설록차]지임을 밝히시고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비봉-

한중일(韓中日) 다완(茶碗)의 동부동(同不同)

<다완의 정의>
 고대로부터 동양삼국의 다인들이 애호하고 사용해온 차를 마신 용기에는 구( ), 종(鍾), 잔(盞), 완(椀,  ,  ) 등이 있었다. 또 이 음다용기들은 용어상의 차이만큼 미세하게 기형상의 특징이나 크기가 다른 것도 물론이다. 일례로 이러한 제반 명칭중 흔히 찻잔(茶盞)이라는 것은 은연중 크기가 작은 것을, 다완(茶碗)이라면 사발형태의 비교적 큰 것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일본에서 말차용 찻사발을 챠왕(茶碗)이라 발음하기 때문인 듯 하다. 차문화계 일각에는 자완이나 쟈왕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으나, 자완(磁碗, 瓷碗) 즉 자기로 만들어진 완이라는 뜻이 아닌 다음에야 일본어인 챠왕, 쟈왕에서 비롯된 말이다. 필자는 여기에서는 앞서 언급한 음다용기의 형태나 크기를 불문하고 이들 모두를 포괄한 보통명사로서 다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근대이전 한중일 다완의 특징>
 고대부터 근대까지 긴 세월동안 차문화는 많은 변화를 이루었고 음다용기인 다완도 시대에 맞추어 때로는 도자기의 발전과 함께 다종다양하게 변화 발전하여 왔다.
 동양삼국의 차문화사를 거슬러 살펴볼 때 그 차이는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 중국과 우리나라는 자국산의 다완(재질은 귀금속, 도자기 등)을 이용한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적어도 16세기 이전까지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로부터의 수입물품인 이른바 카라모노(唐物)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도 큰 특징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적인 연관관계가 매우 밀접하였던 만큼 최고지배계층의 문화나 풍습은 거의 시차없이 공유되었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대륙의 차문화나 도자사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하는 고대의 귀금속제의 다완에서 당시대의 월주요청자, 송시대의 건요산 흑유자와 용천요청자에서 원명시대이후의 경덕진백자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의 귀금속제 다완에서 신라시대의 토기다완에서 강진요, 부안요 등의 고려청자에서 경기도 광주의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일본은 그동안 이 시대에 생산된 중국의 당시대의 삼채나 송시대의 용천요청자, 건요,자주요,길주요의 흑유도 즉, 천목다완 등을 수입하였고, 고려청자와 이도다완이라 부르는 조선시대의 연질백자와 분청자 등을 대량으로 수입 사용하였었다. 
 중국의 원명시대부터는 급속 확산된 잎차를 이용한 음다법으로 인해 중국과 우리나라가 비교적 소형의 전차용 다완을 이용하는 시기에 있어서는 일본에서는 임진6요(임진왜란당시 조선도공들에 의해 개요된 6대요인 하기, 카라츠, 아리타, 사츠마, 아가노, 다카토리도자를 말함)를 중심으로 자체 생산이 가능하게된 말차용다완과 교토의 일부 모쿠베이나 와젠 등의 전차용 다기가 그이전의 수입다완들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완으로 추정가능한 것은 중국에서 수입된 흑유도기인 천목다완이나 우리나라의 연질백자인 이도다완이다.
 반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완이라 추정되는 것은 당시대의 법문사 탑기에서 출토된 유리제의 다완이다. 때문에, 현존하는 차를 마신 것으로 입증가능한 세계 최고(最古)의 다완은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안압지에서 출토된 7-8세기경의 제작으로 추정되는 묵화백분토기다완(토기겉면에 백토분장을 하고 묵화(墨畵)로 운문과 함께 언정영외에 차(茶)자가 쓰여있다)이라 할 수 있다.

< 근대이후 동양삼국의 다완>
 현대사회는 각 개인의 다양한 취향이 그대로 자유롭게 발휘되는 시대이다. 때문에 전체적인 사조를 쉽사리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중일 동양삼국의 다완에는 나름대로 특징이 나타난다.
 말차용 다완은 역시 각 시대를 대표하던 중국의 천목다완 우리나라의 전라도와 경상도 남부의 차생산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에서 이도다완이라부르고 있는 연질백자다완, 일본 교토의 라쿠다완이 꾸준히 재현되고 사용되고 있다.
 전차용 다완은 다양해진 차종류만큼이나 많지만 나름대로 특징을 가진다. 중국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즐겨 마시는 녹차용 다완으로는 커피컵과 같은 기형에 뚜껑이 달려있는 이른바 개배(蓋杯)가 주류를 이루며, 중국다예에서는 문향배세트 등도 애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분청기법의 다양성 탓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말차용 다완을 축소한 형태와 분청자의 모티브를 이용한 전차용 다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교토지역의 전통적인 전차용 다완을 모티브로한 현대작가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중일 모두 전차용의 다완으로 백자류를 쓴다는 것은 대동소이하지만, 기법상으로는 중국은 화려한 오채나 분채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나라는 순백 내지는 문양이 억제된 청화백자가 일본은 교토의 모쿠베이(木米), 와젠(和全) 등의 명공들의 영향에 따른 다채유와 금채가 혼합된 형태가 사용되기도 한다.
 끝으로 전차용 다완의 경우 온도가 뜨거울수록 비교적 작은 크기의 다완을 이용하는 관계로 중국이 가장 작고 우리나라, 일본 순으로 커지는 면도 재미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 설록차(7-8월호)에 실린 원고로 아래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정리하였던 내용입니다.
-비봉-


한중일(韓中日) 다실(茶室)의 동부동(同不同)

 흔히 다실이라고 하면 정원이 딸리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아늑한 공간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다실의 충분조건중 하나라면 몰라도 필요조건은 아니다. 필자의 다실에 대한 정의는 원래의 그 건축공간의 주된 용도를 불문하고 차를 마실 수 있고 또 차를 마시는 공간이면 모두 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전제하에 논지를 펴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중일 동양삼국의 차문화의 발전과정에서 다실이라는 것 자체가 생활주거공간과 밀접한 관계하에 성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중일 삼국다도의 동부동(설록차3.4월호)'에서 필자가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특징의 단면으로 중국의 다예, 우리나라의 다례, 그리고 일본의 다도와 같은 표현법을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그만큼 각종 다서나 고문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각 나라의 문화사조 속에서 그 나라 다도의 특성으로서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궁정다례나 문인다도가 당연히 존재하였지만 일찍이 발달한 다관이나 다루를 통해 모두가 손님의 입장에서 차를 주문하여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자연스럽게 다관의 차박사(茶博士; 학위가 아닌 다루나 다관의 종업원을 지칭)에 의해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예적인 면이 많이 가미되었고 그것이 현대 다인의 손에 의해 이른바 [중국다예] 등과 같은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17세기 말엽부터 쵸우닝(町人)문화라 불리던 상인경제의 부흥에 따라 이들의 교양으로서 말차도(抹茶道)가 유행하자, 다례법의 교습을 전문으로 하는 각 유파는 이에모토(家元)제도의 도입으로 기업화, 세습화에 성공함에 따라 오늘날까지 다도라는 모습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는 승가다도나 문인다도 그리고 궁중에서의 다례 모두가 각 시대를 걸쳐 존재하였지만, 가장 확실한 사료로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역시 궁중다례였고 그것은 사대부들의 가례와 접합되며 오늘에 이름으로써 다례자체가 우리를 대표하는 다도의 형태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양삼국의 다도문화는 주거문화와 밀접한 관계속에서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의  다실의 구조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생활문화는 의자문화로 표현할 수 있듯이 중국다예의 행다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다실 즉 다관이나 다루 자체도 경관이 수려한 호수나 강가에 위치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다다미문화였기 때문에 온기를 위한 다로(茶爐)가 다실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온돌문화의 특성상 굳이 방안의 온기를 위해 화로를 들여올 필요가 없었고, 때문에 각종 민화들을 보더라도 차는 마당에서 시동이 끓여 손님에게 대접한 것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의 다실에 관해서만 상호 비교해 보면 더욱 뚜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와 상응하는 일본의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시대까지는 거의 양국이 유사한 형태의 다실을 가졌었다. 비록 일본의 서원차(書院茶)가 등장하거나 투차가 유행하던 시기의 차회의 형식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나 차를 마실 때 골동품을 진열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공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경관이 수려한 곳에 정자를 세워 차를 즐겼던 고려시대는 일본의 금각사나 은각사로 대표되는 당시의 화려한 다실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일본은 에도바쿠후(江戶幕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격차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사대부들의 문인다도는 서재이자 접빈실이던 사랑방이 다실의 역할까지도 겸하게 된다. 고미술품중 문방구도(文房具圖) 등에서 쉽게 서책들과 다구들이 서가에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승가다도는 각 사찰의 암자를 중심으로 전해지며 자연스럽게 암자는 선승의 도량(道場)이자 다실이기도 하였다. 일지암이 바로 승가다도의 대표적인 다실이 아닐까싶다. 일본의 경우에는 무사의 다도가 승가의 다도와 혼합되고 이것이 재차 쵸우닝의 다도와 융합되면서 일본 다도의 주류로 계승됨에 따라 다례법을 가르치고 그 수입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전문다인들이 세습제를 확립함으로써 차만을 목적으로 마시고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공간인 다실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고 또 대대로 전해질 수 있었다. 
  다실은 음다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중국과 우리나라는 일상생활 공간속에서 차는 객을 접대하되 주객이 따로 없이 동등하게 차를 마시고 또 차는 접빈수단이었기에 별도의 차만을 위한 전문 공간의 필요성은 적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쵸우닝의 다도가 기업화되면서 다례법을 가르치는 것이 세습되며 생활이 가능하게끔 전문 다실이 필요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다실(喫茶之亭)의 주인인 테이슈(亭主)와 손님(客)이라는 등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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