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규보

 

이규보

 

          인생의 온갖 맛을 즐김도 귀중하니

         사람이 사람을 도와 절후 (節候)를 바꾸네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이니

         이에 어긋나면 그것은 괴상한 일.

         그러나 근대의 습속은 기괴함을 좋아하니

         하늘마저 인정의 즐겨함을 따르는 구나.

         시냇가 찻잎사귀 이른 봄에 싹트더니

         황금 같은 여린 움 눈 속에 자랐네

         남방 사람 맹수도 두려워 하지 않고

         험난한 무릅쓰고 칡덩쿨 휘어 잡아

         간신히 채차 하여 불에 쪄 단차 (團茶)를 만드니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릴 진품

         선사는 어디에서 이런 귀중품을 얻었는가.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르고

         활활 타는 화롯불에 손수 차를 달여 보니

         꽃무뉘 자기에 따라 빛깔을 자랑하네.

         입에 대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마치 어린 아이의 젖내와도 같아

         부귀의 가문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을

         우리선사 이를 얻음이 괴상하고 괴상하구려

         남방의 아이들 선사의 처소 알지 못하리.

         찾아가 맛보고 싶은들 어이 알려 줄손가.

         이는 아마도 구중궁궐에서

         고덕한 선사를 대우한 예물인 것을

         임금님의 봉물 (封物)중사 (中史) 편에 보내 왔겠지.

         나는 세상살이 모르는 쓸모없는  나그네.

         좋은 혜산천 (惠山泉)의 물을 감상하긴 했지만

         평생 불우하여 만년을 탄식했는데

         일품을 감상함은 오직 이것뿐인가 싶네.

         이 귀중한 차 마시고 어이 사례 없을손가.

         공에게 맛있는 봄술을 빚기 권하노니

         차 들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오며가며 풍류 (風流 )놀이 시작해 보세

 

   이것은 이규보가 운봉에 사는 고승 노규선사 (老珪禪師)로부터 지귀한 유차를 선물 받자 몹시 기뻐 온갖 찬사를 써서 지은 장편의 유차 예찬시인데 찬찬히 음미하면 고려 새대 차 생활의 풍토를 선명하게 그려 보임임을 알게 된다.

   고려 시대에는 거리에 다점 (茶店)이 있어 일반 백성에게 차를 팔았다.주점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백성들은 약간의 돈을 내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했다. 다점에서 차를 상품으로도 취급했다. 근세 국학자인 문일평이 「차고사」(茶故事)에서 "고려의 차는 진일보하여 상품으로 매매할 만큼 수요 공급의 관계가 보편화하였고"라고 적은 것도 좋은 예려니와 고려 목조이 시중 (侍中) 한언공 (韓彦恭)의 상소를 보고 내린 전교의 요지도 확증을 주는 자료이다.

     "시중의 상소를 보니 지금 선조에 이어 돈만 통용되고 거친 베의 상용를 금지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원망을 산다고 한다. 앞으로는 다점, 주점 같은 각종 상점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 돈도 사용하지만 백성들이 개인적으로 거래를 할 때엔 돈 아닌 토산품도 사용하게 하라."

   차 생활이 어디까지 일반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인들은 인생과 차를 자연스럽게 노래하며 정신적인 풍류를 누렸다.

 

^_^ 돌아가기